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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 - 1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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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 거짓말
“장…혜…미…여기요…됐죠? 야! 송윤지! 같이 가~!”
“어어~ 우리는 요?!”
“미안해요! 다음 번에 해줄게요~!”
혜미는 먼저 저만치 가버리고 있는 윤지를 다급하게 부르며,
미처 사인을 받지 못해 우울해 하는 남학생들에게 사인한 종이와 펜을 돌려주고는
한달음에 윤지에게로 달려가 팔짱을 확 끼워보았다.
하지만 혜미의 팔을 같이 부여잡아 주기는커녕, 팔짱을 꼈는지 어쨌는지 관심 없다는 듯
윤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랬다.
혜미가 윤지의 비밀스런 아르바이트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윤지는 서서히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고, 또 실제로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하지만 혜미 또한 전처럼 윤지에게만 신경을 쓰기에는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축구 연습이 끝나는 저녁 무렵엔 스탠드에서 기다렸다가 몰려드는 남학생들 덕분에
혜미는 경기를 치뤄 보기도 전부터 사인 공세에 시달리곤 했었는데,
점점 남학생의 수가 늘어날수록 윤지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점점 따로따로 집으로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혜미는 이 모든 게 미안했고, 또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축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이었기에, 조금만 윤지가 이해해 주길 바랬지만 아직까지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
오늘도 변함없이 윤지의 눈치를 살피는 혜미였다.
“또 왜 그래~애, 응?”
어색하지만 애써 애교를 떨어보는 혜미의 모습에, 무표정하기만 하던 윤지는
잠깐이지만 웃음기를 보일 뻔도 했지만, 결국 겨우 참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혜미가 미워진 걸까.
“왜 벌써 왔니? 아직도 사인해달라는 놈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야, 스타는 원래 사인도 조금 해주다 말고 그러는 거다 너?”
요새 들어 부쩍 많아진 혜미의 너스레에 윤지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풉…”
“어? 웃었다 그치? 윤지 너 지금 웃은 거지? 응?”
“피이,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야. 넘겨짚지 마.”
간만에 기분이 풀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혜미는 윤지를 꼬드겨보려 했다.
“근데 배 안고프니? 난 배고파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인데…
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 가서 뭐라도 좀 먹을까?”
“안돼 지금은. 나 일하러 가야 돼.”
“야 송윤지! 이젠 그 일 그만해도 되잖아. 많이는 아니어도, 코치로 받는 월급이면…
그 정도면 더 이상은… 이러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결국 흥분을 주체 못하고 터져버린 혜미와는 반대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빤히 혜미를 바라보던 윤지는 아주 잠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이내 얼굴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일 보자.”
결국은 다시 ‘쌩’하고 찬바람이 불만큼 냉랭해져 버린 윤지가
혜미의 팔을 풀고 저만치 가고 있었고, 혜미는 차마 그런 윤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
밤 이었음에도 너무나 맑은 하늘에 속속 박혀있는 별들이 내는 ‘반짝반짝’ 소리를 시작으로,
귀뚤거리는 소리, 개굴거리는 소리, 그리고 뻐꾹 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사랑방이었지만,
정작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선 그 흔한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영후에게 질문을 던진 이후로 남희는 여전히 방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영후는 영후대로 천정을 바라보며 적절한 답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축구 말고는 영후가 남에게 명쾌한 답을 해 줄 수 있을 리가 만무 했기에,
점점 길어만 지고 있는 침묵의 시간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수림씨하고는… 이제 끝난 건가요?”
갑작스런 남희의 질문에, 그제야 영후는 조금쯤 놀란 눈으로 남희를 바라봤지만,
여전히 남희는 세운 오른 무릎에 턱을 고인 채 방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영후는 잠시 생각해봤지만, 남희는 그런 영후에게 다시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수림씨랑… 끝난 거냐구요.”
“…네…”
그제야, 질문도 또 해야 할 대답도 모두가 현실이었음을 깨달은 영후는
그 짧은 대답을 내놓기가 너무나 어려웠지만, 결국은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영후와는 너무나 상반될 정도로 남희의 입에선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술술 질문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박기자님과 사귀시는 건가요?”
“남희씨, 갑자기 왜…”
“그냥… 궁금했어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신기했거든요.”
자연스럽게라니…
영후가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었는지 알고나 말하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곧 술 한잔에 풀어버리고 말았다. 어찌됐든, 이미 지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왜 그랬던 건지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실은, 저도 아직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걸요.”
“그래도… 저보단 나으시잖아요.”
“?”
“전… 아직까지 ‘사랑’이란 걸 해본 적도 없어요.”
그리고, 이제야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은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라고도 말하고 싶었던 남희였지만 차마 그 이야기까지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어쩌면 눈 앞에서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이런 말 하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직까지
사랑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뭐랄까… 수림씨와 함께 했었던 그 순간 순간들이
사랑이 맞는 건지…아니면 오랜 시간 친구처럼 서로를 지켜봐 온 하연이와의
편안한 감정이 진짜 사랑인 건지…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영후의 입에서 나온 두 여자들에 대해 남희도 다시 떠올려보며, 전에도 생각했었던,
그 두 여자에 비해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처지가 오버랩 되자
또다시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저 우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패배하지 않으려면 배워야 했고, 익혀야 했다.
물론 하연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영후와 함께 한다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우선은, 수림이 어떻게 영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어떻게… 만나게 된 건 가요? 수림씨 하고는…”
그저 남희에게 받은 짧은 질문 만으로도 영후의 머릿속에선 불꽃같았던
수림과의 나날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고,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듯 영후의 입에선 천천히 그러나 하나도 빠짐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남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영후와 수림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이제는 거의 모든 직원이 퇴근했을 불 꺼진 커다란 빌딩 건물 유리창 사이로
홀로 밝게 빛나는 공간 속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기사 작성에 여념이 없던
하연은 갑자기 다짜고짜 키보드를 열손가락 모두를 사용해 ‘퍽퍽퍽!’ 내려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랬을까.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려 대느라 산발이 된 머리를 언제 그랬냐는 듯,
뒤로 모아 머리 끈으로 대충 묶더니 저녁부터 골백번은 더 들여다보았을 핸드폰을
또다시 들어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번에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버렸다.
“이 자식이 진짜…”
걱정스럽던 마음은 어느덧 열불로 바뀌어 이제는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다짐을 하던 하연은 지금이라도 한국여대에 가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고 있었다. 혹 누구라도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에 모든 생각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고,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너무나 반가웠기에 채 한번 울리기도 전에 다급히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영후니? 영후야!”
다급한 목소리의 하연과는 반대로 전화를 건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박기자님 되시죠? 전, 오수림이라고… 한국 여대 축구부 코친데요.
혹시 감독님께서 연락 없으셨었나 해서요.’
수림의 이름을 듣고 난 하연은 우선은 영후가 아니라는 것에 금방 목소리에서
생기가 사라졌고, 게다가 영후를 걱정하는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더욱 상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연락이 닿질 않아서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나와서 권코치님 연락처로
전화를 드려봤는데도 역시나 안돼서… 혹시나 전화 받으셨나 해서요.’
그제야, 이 여자가 영후를 그렇게나 다급하게 만들었던, 그때의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겨우 해낼 수 있는 하연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지만 대뜸 그것부터 묻기엔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았다.
“저도, 궁금해 하던 차였어요.”
‘네에…’
서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전혀 ‘통화’하지 못하는 듯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전화를 끊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저…’
생각이 같았기에 동시에 입을 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연과 수림은 동시에 운을 떼놓고는 또다시 동시에 가볍게 웃었다.
“말씀하세요.”
‘아뇨, 먼저...’
“지금… 시간 괜찮으시다면, 좀 볼 수 있을까요?”
수림은 하연의 말에 조금 놀랄 뻔도 했다.
실은 수림이 하고 싶었던 말 또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
“이걸 어쩌죠? 오늘은 윤지가 ‘애인 모드’라서요. ”
다리부터 엉덩이 부분까지 깊게 파여있는 진한 다홍색의 ‘치파오’를 입고 있는
40대를 갓 넘긴 것으로 보이는 마담이 살가운 눈웃음을 치며 조전무에게 말을 했지만,
조전무는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굴긴… 하여간 젊으나 늙으나 남자는 남자란 말이지? 훗~’
조전무의 비위를 맞춰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속마음은 여지없이 비웃음
그 자체였던 마담의 속을 짐작도 못하는 조전무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솔직히 오늘은 여러 스케줄로 인해 이 곳으로 올 상황이 아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년…분명히 예사 몸매가 아닐 거야 흐흐…조금만 기다려라.
곧, 내 몸 위에서 죽는다고 신음을 지를 날이 올 테니까.’
강진에서 처음 본 남희의 토끼같이 놀라는 눈을 떠올리던 조전무의 그것은
어느덧 조금씩 커지고 있었지만, 눈썰미 좋은 마담이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
바지 위 그 어느 곳에서도 전혀 티가 나지 않고 있었고, 마담은 어찌됐든
조전무 같은 거물을 섭섭하게 했다간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바로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김군아, 지금 쉬고 있는 에이스들 모두 올라오라고 해… 응, 지금 바로.”
인터폰을 내려놓은 마담을 바라보며, 조전무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애들은 뭐 하러? 괜찮다면 마담은 어떤가? 응?”
“아이, 놀리시는 거에요? 젊은 애들만 품으시던 분이 저 같이 한 물 간 노계가
성에 차시기나 하실려구요~”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스며든 교태를 부려보며 조전무의 팔에 매달려
C컵에 가까운 가슴을 부벼 댔지만, 사실은 노계 따위와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은
마담 또한 손톱만큼도 없었음을 슬슬 녹아가고 있는 조전무는 절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룸에 옷을 입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어색할 지경이었던 윤지는 그러나,
자신과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남자 덕분에 꽤나 긴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분명 윤지는 이 남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건만 이 남자, 근명은
전혀 윤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기에 실망감도 조금은 있었지만
어쩌면 그게 더 다행스럽기도 했었던 것도 같았다.
“옷 벗겨줄까 오빠?”
아직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앉아있는 근명의 어깨에 달라붙으며 윤지는 속삭였지만,
근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옷을 벗기기 쉽도록 협조 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윤지에게 묻고 있었다.
“너 오늘 내 애인하는 거 맞지?”
“그럼 오빠~, 오늘은 내가 진짜 애인 해줄게. 뭐하고 싶어? 입으로 해줄까?
아님 손으로? 우선 씻을래? 내가 씻겨줄게.”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윤지가 어느새 옷을 벗으며 어느덧 알몸으로 근명의 앞에 서자,
근명은 윤지의 환히 빛나는 몸을 보기는커녕, 윤지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윤지는 자신의 몸이 아닌 눈을 바라보고 있는 근명 덕분에 꽤나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근명 또한 낯선 여자가 돈을 받는 다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눈 앞에 부끄러움도
모른 채 알몸으로 서있는 모양이 참 어이가 없었다.
‘왜 이런 걸까. 이런 곳에 오는 게 처음도 아니면서.’
근명은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알몸으로 서있는 저 아이에게 자신의 현 상태를 어떻게든
이해시켜보고 싶었고,또 마음을 전해보고 싶었기에 근명은 슬금슬금 피어 오르는
욕망을 애써 잠재우고 있었다.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여느 남자 같으면 벌써 짐승처럼 달려들었을 텐데, 지금의 근명은 너무나 침착하게,
아니 슬픈 눈으로 윤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남자와 알몸으로 있을 땐
단 한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스산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 탓에
윤지는 조금쯤 부르르 몸을 떨기도 했다.
“아무 여자와 시도 때도 없이 그걸 해대도 남는 건 없더라…”
하연을 그렇게 보낸 이후로 자신도 모르게 허탈감에 빠져버린 근명의 심경을 알 리
없었던 윤지는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벗어놓은 옷을 집어 들어 입었고,
그런 윤지를 보며 근명은 자신의 옆자리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앉아. 그리고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윤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치 연애의 한 과정인 ‘섹스’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텔 같은 곳에 들어선 커플마냥, 어색하리만치 나란히 침대에 앉아 보았다.
“어째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그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남자들이라면 전혀 궁금해 하지 않을 문제를, 그것도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오고 있는
근명 덕분에 윤지는 처음으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척 수치스럽게 느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전혀 다른 공간에서 여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있는
남자의 마음 또한 윤지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
“그러니까… 감독님은 연애보다… 그… ’섹스’를 먼저 하게 된 거군요?”
차마 침이 마른 입으로 묻기 뭐했는지, 홍주를 한 잔 들이킨 후에야 남희가 물어왔고,
영후도 역시 한잔을 마셔본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랬다.
수림과의 첫 만남부터 돌이켜 보면, 둘 사이에 사랑 아니 애정 같은 게 미처
자리잡기도 전에 몸을 먼저 섞었던 셈이었으니까.
“그런… 셈이죠.”
“그게, 정말 가능하던가요?”
“네? 뭐… 가요?”
“그거 말이에요… 섹스…”
너무나 직접적인 남희의 질문에 영후는 대답대신 술 한잔을 더 들이켜야 했다.
하지만 남희에게 ‘벌주’는 통하지 않는 듯, 다시금 길게 풀어서 질문을 해왔다.
“애정도 없이, 그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섹스’가 가능한 거냐구요.”
“가능했으니까… 그랬겠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굳이 남희에게 믿어달란 이야기 따윈 하고 싶지도 않았건만, 왜 먼저 이야기를 꺼내놓고
흥분을 하고 있는 건지 영후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섹스가 중요했던 게 아닌데…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다친 수림씨가 문제인 건데…
그런 마음들을 남희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이해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영후는 답답한 마음에 또다시 한 잔을 넘겨보고 있었다.
“그럼… 지금도 같은 건가요? 그때하고?”
뭐가 같다는 말인가?
달지만 도수가 높았던 홍주의 기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영후에게
모를 말만 하는 남희가 이상해 보였지만, 남희는 영후의 상태를 짐작하지도 못한 채
연신 이상한 말을 해대는 것만 같았다.
“증명해 보세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남희의 발 아래로, 카키색의 가디건이 떨어져 내린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 남희의 몸에서 옷이란 거추장스러운 문명의 이기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남희는 속옷 차림이 되어 있었다.
아이보리 색의 브래지어는 그야말로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담고 있는 기능에 충실하다 못해
버거워 보일 지경이었고, 역시나 동일한 색의 삼각 팬티는 수림의 엉덩이에 뒤지지 않는 탄력
덕분에 더욱 앞면이 팽팽해 보였고, 그에 유난히 검게 보이는 수풀은 꽃처럼 피어올라 반쯤
비치고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도 영후의 숨은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렇지만 이래선 안 되는
것이었기에 영후는 남희를 외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만류해보았다.
“이러지 말아요.”
“왜요? 왜 안되나요? 수림씨하곤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저하고는 못하시겠다는 거죠?”
“그건… 이제는… 더 이상은 술 따위에 휩쓸려서 사람 마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애써 남희의 눈부신 몸매를 외면하며 또다시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입으로 가져가려는
영후의 손을 어느새 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잡고 있는 남희가 있었다.
“감독님 마음은 알겠어요. 근데…”
“?”
“거긴 왜 그렇게 된 거죠?”
전혀 수줍음도 없이 커질 대로 커져버린 영후의 앞섬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남희 덕에
영후는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건… 그러니까 남자들은 다 이런 거에요. 머리하고, 마음하고는 상관 없이…”
“본능… 이란 거네요, 그쵸?”
“하지만… 꼭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걸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할 수는 있는 거죠? 섹스.”
무슨 여자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이렇게나 직설적인 단어들만을 골라 말한단 말인가.
어떻게든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영후였지만, 이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한
남희 앞에서 도망칠 틈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다칠지도 몰라요. 남희씨 마음…”
“사랑하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니까, 다칠 마음 같은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나누고 있던 대화 중 유일하게 남희는 영후에게 거짓말을 해 보였지만,
극도로 당황하고 있던 영후가 그 사실을 눈치 챌 리가 없었고,
이내 체념한 듯한 영후도 천천히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아…”
남희는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켜보았다.
영후가 겨우 티셔츠 하나를 벗었을 뿐인데도 드러나는 상체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탄탄한 가슴과 너무나 음영이 뚜렷한 조각난 복근은
운동에 전념한 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기에 남희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영후가 벨트를 풀어 바지를 벗어버리자, 흡사 말의 다리와 비견될 만큼
세세한 근육들이 허벅지 근처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고 그 다리 가운데에 자리한
영후의 그것은 이미 타이트한 사각 팬티에서 튀어나와 머리를 슬며시 내밀고 있었다.
그 모양을 바로 눈 앞에서 숨도 쉬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던 남희는 그러나
역시 궁금함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은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벌써… 나온 건가요? 정액… 이란 게?”
남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남희였지만, 그래도 책으로 접한 지식들은 충만했기에
지금 영후의 물건 끝에 맺혀 있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묻는 것이었다.
“아…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커지면 조금씩 나오는 거에요.”
영후의 말에 남희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그녀의 궁금증은 조금도 해소되지 못한 듯 했다.
“음… 조금쯤 더…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왠지 지금 이 상황은 연인들이 나누는 섹스의 과정이 아니라, 마치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는 자리인 것만 같아 어느덧 창피함도 느껴지지 않는 듯 했기에
영후는 남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천천히 팬티마저 내려 보였다.
그제야 답답한 곳에 속박되어 있었던 영후의 그것은 튕겨나오 듯 갑작스럽게
남희의 눈 앞에 등장했고, 그 엄청난 크기와 굵기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분명 여자의 질은 신축성이 있기에 발기한 남자의 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지금 보는 그것은 그럴만한 크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영후의 밝은 피부 톤과는 너무나 다른 검붉은 색의 살갗과 핏줄,
그리고 근육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남희는 정말로 영후와는 상관없는
그저 다른 객체인 것만 같아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 본 영후에게
이끌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처음 본 영후의 물건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헉!”
달아오른 방의 분위기 탓 이었을까.
남희는 하나하나 양해를 구하던 질문을 멈추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영후의 자지를
잡아보았지만 방심하고 있던 영후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고 있던 건 다름아닌 남희였다.
‘이렇게나…’
하마터면, 잡자마자 놓을 뻔 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영후의 자지는 게다가 정말로
살아 숨쉬듯 맥박이 느껴졌고,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또한 맑은 물은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남희는 남은 한 손의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찍어보았다.
약간 점성이 있는 것도 같았고, 그렇게 나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손가락을 살짝 혀에 가져다 대어본 남희는 그러나 너무나 소량이었던지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기에 이윽고 혀를 직접 영후의 그것에 대어보았다.
“남희씨… 지금… 뭐 하는… 흡!”
영후는 영후대로 지금 엄청난 흥분에 휩싸이는 중이었다.
이렇게 조신한 여자가 남자의 몸을, 그리고 성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해
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이었는데, 아무리 궁금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탐험을 하고 있으니 그 묘한 상황이 가져다 주는 흥분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저 혀로 귀두의 갈라진 틈 사이를 몇 번 핥아보던 남희는 그저 그 행위 만으로도
온 몸을 휘감는 짜릿한 느낌이 들어 너무나 놀라고 있었다.
진지하게 애무를 한 것도, 받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느껴지는 짜릿함이 이 정도일 진데,
진짜 애무, 진짜 섹스를 하게 된다면 어쩌면 남희는 엄청난 느낌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 품에서라면 어쩌면
죽는 것도 행복한 일일 거라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고 있는 남희였다.
“해… 주세요.”
방안의 열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의 욕정에
달아올랐기 때문인지, 더없이 빨간 볼을 더욱더 물들이며 수줍게 입을 열었고,
설마 했던 말이 남희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영후는 더욱 당황하고 있었다.
“네? 남희씨… 지금 무슨 소리를…”
“부탁… 드릴게요.”
자신의 물건을 부여잡은 채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남희의 얼굴을 보며 영후는 난감하기만 했다.
-
한참을 묵묵히 근명의 옆에 앉은 채 하연과 있었던 (물론 하연의 이름을 근명은 말하지
않았기에 윤지도 근명의 속을 태우고 있는 그녀의 존재가 하연이라고는 알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윤지는 확실하게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어쩜… 그 여자, 좋아하게 됐나 보다 오빠.”
“설마… 좋아하고 말고 할 거리도 없었는 걸 뭐. 게다가…”
“게다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여태껏 그런 완벽한 남자는 또 없었기에,
도저히 싸워 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한 남자’ 떠올리며 쓸쓸하게 대답하는 근명이었다.
“그 여자는 벌써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구.”
“헤에…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진 않는다 뭐.”
이런 상황에서 축구에 관한 예를 들어주는 이 아이가 왠지 귀여워 보이는 근명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오빠 마음 알 것도 같애. 뭐랄까,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아끼고 싶어지는 거,
그런 기분 아냐? 그 여자가 오빠 맘에 들어오기 전까진 그저 여자라면 먼저 하고 보던
그런 거 하고는 다른 거… 그래서 전에 없던 감정 때문에 머리 아프고 그런 거 아닌가?”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윤지는 이야기의 근원이 되었을 혜미를 잠시 떠올려 봤지만
이내 털어버리고는 빙긋 웃으며 대충 둘러대 보았다.
“나야 뭐, 여기에 있으면 별의별 남자들 다 만나게 되는 걸?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뭐.
그저 몸에 대한 욕구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또 누구에게 얘기하고 풀 수 있겠어? 너무 가까운 사람한테는
꺼내보지도 못할 것들일 테고, 그렇다고 또 생뚱맞게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는
더더욱 없을 거 아냐. 그러니 이런 곳에 있는 나를 찾아 오는 거 아니겠어?”
“하긴.”
윤지의 말을 듣고 난 근명은 오랜만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실은 근명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윤지와 같이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대로의 조언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근명은
친구를 만들 여유조차 없었기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윤지가 참 고마웠다.
“그럼 어쨌든 오빠 고민은 해결 된 거지?”
“뭐 일단은.”
“그럼 우리 이제 뭐 할래?”
은근히 근명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곧 진행될 ‘그것’을 예상하며 윤지가 물었지만
근명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의외였다.
“음… 우선 좀 잘까?”
“그냥 잠? 섹스 말고? 이렇게 누워서 자는 잠?”
설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을 자자는 말인지 몇 번이고 다시금 확인하려 드는 윤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주며 근명은 대답을 했다.
“응. 너도 내 옆에서 같이 자주면 더 좋고.”
그제야 이 남자, 진심이구나 싶어진 윤지는 밝게 웃으며 근명에게 매달려 보았다.
“당근이지 오빠. 잊었어? 오늘은 내가 오빠 애인이잖아~”
이내 근명
“장…혜…미…여기요…됐죠? 야! 송윤지! 같이 가~!”
“어어~ 우리는 요?!”
“미안해요! 다음 번에 해줄게요~!”
혜미는 먼저 저만치 가버리고 있는 윤지를 다급하게 부르며,
미처 사인을 받지 못해 우울해 하는 남학생들에게 사인한 종이와 펜을 돌려주고는
한달음에 윤지에게로 달려가 팔짱을 확 끼워보았다.
하지만 혜미의 팔을 같이 부여잡아 주기는커녕, 팔짱을 꼈는지 어쨌는지 관심 없다는 듯
윤지는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랬다.
혜미가 윤지의 비밀스런 아르바이트를 알게 되고 나서부터 윤지는 서서히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고, 또 실제로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씩…
하지만 혜미 또한 전처럼 윤지에게만 신경을 쓰기에는 많은 것들이 변해가고 있었다.
이를테면, 축구 연습이 끝나는 저녁 무렵엔 스탠드에서 기다렸다가 몰려드는 남학생들 덕분에
혜미는 경기를 치뤄 보기도 전부터 사인 공세에 시달리곤 했었는데,
점점 남학생의 수가 늘어날수록 윤지는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점점 따로따로 집으로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혜미는 이 모든 게 미안했고, 또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축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꿈이었기에, 조금만 윤지가 이해해 주길 바랬지만 아직까지는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여서
오늘도 변함없이 윤지의 눈치를 살피는 혜미였다.
“또 왜 그래~애, 응?”
어색하지만 애써 애교를 떨어보는 혜미의 모습에, 무표정하기만 하던 윤지는
잠깐이지만 웃음기를 보일 뻔도 했지만, 결국 겨우 참아내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혜미가 미워진 걸까.
“왜 벌써 왔니? 아직도 사인해달라는 놈들이 저렇게나 많은데.”
“야, 스타는 원래 사인도 조금 해주다 말고 그러는 거다 너?”
요새 들어 부쩍 많아진 혜미의 너스레에 윤지는 순간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풉…”
“어? 웃었다 그치? 윤지 너 지금 웃은 거지? 응?”
“피이, 어이가 없어서 그런 거야. 넘겨짚지 마.”
간만에 기분이 풀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혜미는 윤지를 꼬드겨보려 했다.
“근데 배 안고프니? 난 배고파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인데…
그러지 말고 우리, 어디 가서 뭐라도 좀 먹을까?”
“안돼 지금은. 나 일하러 가야 돼.”
“야 송윤지! 이젠 그 일 그만해도 되잖아. 많이는 아니어도, 코치로 받는 월급이면…
그 정도면 더 이상은… 이러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결국 흥분을 주체 못하고 터져버린 혜미와는 반대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로
빤히 혜미를 바라보던 윤지는 아주 잠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이내 얼굴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일 보자.”
결국은 다시 ‘쌩’하고 찬바람이 불만큼 냉랭해져 버린 윤지가
혜미의 팔을 풀고 저만치 가고 있었고, 혜미는 차마 그런 윤지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
밤 이었음에도 너무나 맑은 하늘에 속속 박혀있는 별들이 내는 ‘반짝반짝’ 소리를 시작으로,
귀뚤거리는 소리, 개굴거리는 소리, 그리고 뻐꾹 거리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는 사랑방이었지만,
정작 마주앉아 있는 두 사람 사이에선 그 흔한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고 있었다.
영후에게 질문을 던진 이후로 남희는 여전히 방바닥만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영후는 영후대로 천정을 바라보며 적절한 답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축구 말고는 영후가 남에게 명쾌한 답을 해 줄 수 있을 리가 만무 했기에,
점점 길어만 지고 있는 침묵의 시간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수림씨하고는… 이제 끝난 건가요?”
갑작스런 남희의 질문에, 그제야 영후는 조금쯤 놀란 눈으로 남희를 바라봤지만,
여전히 남희는 세운 오른 무릎에 턱을 고인 채 방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영후는 잠시 생각해봤지만, 남희는 그런 영후에게 다시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수림씨랑… 끝난 거냐구요.”
“…네…”
그제야, 질문도 또 해야 할 대답도 모두가 현실이었음을 깨달은 영후는
그 짧은 대답을 내놓기가 너무나 어려웠지만, 결국은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영후와는 너무나 상반될 정도로 남희의 입에선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술술 질문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 박기자님과 사귀시는 건가요?”
“남희씨, 갑자기 왜…”
“그냥… 궁금했어요.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시는 것 같아서 좀… 신기했거든요.”
자연스럽게라니…
영후가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었는지 알고나 말하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지만,
곧 술 한잔에 풀어버리고 말았다. 어찌됐든, 이미 지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왜 그랬던 건지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실은, 저도 아직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걸요.”
“그래도… 저보단 나으시잖아요.”
“?”
“전… 아직까지 ‘사랑’이란 걸 해본 적도 없어요.”
그리고, 이제야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은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났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라고도 말하고 싶었던 남희였지만 차마 그 이야기까지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그랬다가는 어쩌면 눈 앞에서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저도… 이런 말 하면 참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직까지
사랑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뭐랄까… 수림씨와 함께 했었던 그 순간 순간들이
사랑이 맞는 건지…아니면 오랜 시간 친구처럼 서로를 지켜봐 온 하연이와의
편안한 감정이 진짜 사랑인 건지…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영후의 입에서 나온 두 여자들에 대해 남희도 다시 떠올려보며, 전에도 생각했었던,
그 두 여자에 비해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의 처지가 오버랩 되자
또다시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저 우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패배하지 않으려면 배워야 했고, 익혀야 했다.
물론 하연과 같이 오랜 시간 동안 영후와 함께 한다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우선은, 수림이 어떻게 영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어떻게… 만나게 된 건 가요? 수림씨 하고는…”
그저 남희에게 받은 짧은 질문 만으로도 영후의 머릿속에선 불꽃같았던
수림과의 나날들이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고,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듯 영후의 입에선 천천히 그러나 하나도 빠짐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남희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영후와 수림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이제는 거의 모든 직원이 퇴근했을 불 꺼진 커다란 빌딩 건물 유리창 사이로
홀로 밝게 빛나는 공간 속에서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기사 작성에 여념이 없던
하연은 갑자기 다짜고짜 키보드를 열손가락 모두를 사용해 ‘퍽퍽퍽!’ 내려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그랬을까.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려 대느라 산발이 된 머리를 언제 그랬냐는 듯,
뒤로 모아 머리 끈으로 대충 묶더니 저녁부터 골백번은 더 들여다보았을 핸드폰을
또다시 들어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이번에도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버렸다.
“이 자식이 진짜…”
걱정스럽던 마음은 어느덧 열불로 바뀌어 이제는 눈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가만 안 두겠다는 다짐을 하던 하연은 지금이라도 한국여대에 가볼까 하는
생각까지 해보고 있었다. 혹 누구라도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울려대는 핸드폰 벨소리에 모든 생각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고,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너무나 반가웠기에 채 한번 울리기도 전에 다급히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영후니? 영후야!”
다급한 목소리의 하연과는 반대로 전화를 건 상대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고 있었다.
‘아… 죄송해요. 박기자님 되시죠? 전, 오수림이라고… 한국 여대 축구부 코친데요.
혹시 감독님께서 연락 없으셨었나 해서요.’
수림의 이름을 듣고 난 하연은 우선은 영후가 아니라는 것에 금방 목소리에서
생기가 사라졌고, 게다가 영후를 걱정하는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더욱 상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연락이 닿질 않아서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나와서 권코치님 연락처로
전화를 드려봤는데도 역시나 안돼서… 혹시나 전화 받으셨나 해서요.’
그제야, 이 여자가 영후를 그렇게나 다급하게 만들었던, 그때의 여자였구나 하는 생각을
겨우 해낼 수 있는 하연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어떻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알고
있던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지만 대뜸 그것부터 묻기엔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았다.
“저도, 궁금해 하던 차였어요.”
‘네에…’
서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지만 전혀 ‘통화’하지 못하는 듯한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전화를 끊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 ‘저…’
생각이 같았기에 동시에 입을 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연과 수림은 동시에 운을 떼놓고는 또다시 동시에 가볍게 웃었다.
“말씀하세요.”
‘아뇨, 먼저...’
“지금… 시간 괜찮으시다면, 좀 볼 수 있을까요?”
수림은 하연의 말에 조금 놀랄 뻔도 했다.
실은 수림이 하고 싶었던 말 또한 그것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
“이걸 어쩌죠? 오늘은 윤지가 ‘애인 모드’라서요. ”
다리부터 엉덩이 부분까지 깊게 파여있는 진한 다홍색의 ‘치파오’를 입고 있는
40대를 갓 넘긴 것으로 보이는 마담이 살가운 눈웃음을 치며 조전무에게 말을 했지만,
조전무는 쉽게 포기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굴긴… 하여간 젊으나 늙으나 남자는 남자란 말이지? 훗~’
조전무의 비위를 맞춰주는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속마음은 여지없이 비웃음
그 자체였던 마담의 속을 짐작도 못하는 조전무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솔직히 오늘은 여러 스케줄로 인해 이 곳으로 올 상황이 아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년…분명히 예사 몸매가 아닐 거야 흐흐…조금만 기다려라.
곧, 내 몸 위에서 죽는다고 신음을 지를 날이 올 테니까.’
강진에서 처음 본 남희의 토끼같이 놀라는 눈을 떠올리던 조전무의 그것은
어느덧 조금씩 커지고 있었지만, 눈썰미 좋은 마담이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
바지 위 그 어느 곳에서도 전혀 티가 나지 않고 있었고, 마담은 어찌됐든
조전무 같은 거물을 섭섭하게 했다간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바로 인터폰을 집어 들었다.
“김군아, 지금 쉬고 있는 에이스들 모두 올라오라고 해… 응, 지금 바로.”
인터폰을 내려놓은 마담을 바라보며, 조전무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애들은 뭐 하러? 괜찮다면 마담은 어떤가? 응?”
“아이, 놀리시는 거에요? 젊은 애들만 품으시던 분이 저 같이 한 물 간 노계가
성에 차시기나 하실려구요~”
이 바닥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스며든 교태를 부려보며 조전무의 팔에 매달려
C컵에 가까운 가슴을 부벼 댔지만, 사실은 노계 따위와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은
마담 또한 손톱만큼도 없었음을 슬슬 녹아가고 있는 조전무는 절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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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에 옷을 입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어색할 지경이었던 윤지는 그러나,
자신과 나란히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남자 덕분에 꽤나 긴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분명 윤지는 이 남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건만 이 남자, 근명은
전혀 윤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기에 실망감도 조금은 있었지만
어쩌면 그게 더 다행스럽기도 했었던 것도 같았다.
“옷 벗겨줄까 오빠?”
아직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앉아있는 근명의 어깨에 달라붙으며 윤지는 속삭였지만,
근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옷을 벗기기 쉽도록 협조 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리곤 무표정한 얼굴로 윤지에게 묻고 있었다.
“너 오늘 내 애인하는 거 맞지?”
“그럼 오빠~, 오늘은 내가 진짜 애인 해줄게. 뭐하고 싶어? 입으로 해줄까?
아님 손으로? 우선 씻을래? 내가 씻겨줄게.”
이런 저런 말을 하며 윤지가 어느새 옷을 벗으며 어느덧 알몸으로 근명의 앞에 서자,
근명은 윤지의 환히 빛나는 몸을 보기는커녕, 윤지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윤지는 자신의 몸이 아닌 눈을 바라보고 있는 근명 덕분에 꽤나 부끄러움이 느껴졌고,
근명 또한 낯선 여자가 돈을 받는 다는 이유 만으로 자신의 눈 앞에 부끄러움도
모른 채 알몸으로 서있는 모양이 참 어이가 없었다.
‘왜 이런 걸까. 이런 곳에 오는 게 처음도 아니면서.’
근명은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며 생각해보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은 알몸으로 서있는 저 아이에게 자신의 현 상태를 어떻게든
이해시켜보고 싶었고,또 마음을 전해보고 싶었기에 근명은 슬금슬금 피어 오르는
욕망을 애써 잠재우고 있었다.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여느 남자 같으면 벌써 짐승처럼 달려들었을 텐데, 지금의 근명은 너무나 침착하게,
아니 슬픈 눈으로 윤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남자와 알몸으로 있을 땐
단 한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스산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 탓에
윤지는 조금쯤 부르르 몸을 떨기도 했다.
“아무 여자와 시도 때도 없이 그걸 해대도 남는 건 없더라…”
하연을 그렇게 보낸 이후로 자신도 모르게 허탈감에 빠져버린 근명의 심경을 알 리
없었던 윤지는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벗어놓은 옷을 집어 들어 입었고,
그런 윤지를 보며 근명은 자신의 옆자리를 살짝 두드리며 말했다.
“이리 앉아. 그리고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윤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치 연애의 한 과정인 ‘섹스’를 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텔 같은 곳에 들어선 커플마냥, 어색하리만치 나란히 침대에 앉아 보았다.
“어째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그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남자들이라면 전혀 궁금해 하지 않을 문제를, 그것도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오고 있는
근명 덕분에 윤지는 처음으로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이 무척 수치스럽게 느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전혀 다른 공간에서 여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있는
남자의 마음 또한 윤지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
“그러니까… 감독님은 연애보다… 그… ’섹스’를 먼저 하게 된 거군요?”
차마 침이 마른 입으로 묻기 뭐했는지, 홍주를 한 잔 들이킨 후에야 남희가 물어왔고,
영후도 역시 한잔을 마셔본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랬다.
수림과의 첫 만남부터 돌이켜 보면, 둘 사이에 사랑 아니 애정 같은 게 미처
자리잡기도 전에 몸을 먼저 섞었던 셈이었으니까.
“그런… 셈이죠.”
“그게, 정말 가능하던가요?”
“네? 뭐… 가요?”
“그거 말이에요… 섹스…”
너무나 직접적인 남희의 질문에 영후는 대답대신 술 한잔을 더 들이켜야 했다.
하지만 남희에게 ‘벌주’는 통하지 않는 듯, 다시금 길게 풀어서 질문을 해왔다.
“애정도 없이, 그저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섹스’가 가능한 거냐구요.”
“가능했으니까… 그랬겠죠.”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요.”
굳이 남희에게 믿어달란 이야기 따윈 하고 싶지도 않았건만, 왜 먼저 이야기를 꺼내놓고
흥분을 하고 있는 건지 영후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섹스가 중요했던 게 아닌데…
그것 때문에 마음을 다친 수림씨가 문제인 건데…
그런 마음들을 남희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이해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영후는 답답한 마음에 또다시 한 잔을 넘겨보고 있었다.
“그럼… 지금도 같은 건가요? 그때하고?”
뭐가 같다는 말인가?
달지만 도수가 높았던 홍주의 기운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영후에게
모를 말만 하는 남희가 이상해 보였지만, 남희는 영후의 상태를 짐작하지도 못한 채
연신 이상한 말을 해대는 것만 같았다.
“증명해 보세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선 남희의 발 아래로, 카키색의 가디건이 떨어져 내린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 남희의 몸에서 옷이란 거추장스러운 문명의 이기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남희는 속옷 차림이 되어 있었다.
아이보리 색의 브래지어는 그야말로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담고 있는 기능에 충실하다 못해
버거워 보일 지경이었고, 역시나 동일한 색의 삼각 팬티는 수림의 엉덩이에 뒤지지 않는 탄력
덕분에 더욱 앞면이 팽팽해 보였고, 그에 유난히 검게 보이는 수풀은 꽃처럼 피어올라 반쯤
비치고 있었다. 그 광경만으로도 영후의 숨은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렇지만 이래선 안 되는
것이었기에 영후는 남희를 외면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만류해보았다.
“이러지 말아요.”
“왜요? 왜 안되나요? 수림씨하곤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저하고는 못하시겠다는 거죠?”
“그건… 이제는… 더 이상은 술 따위에 휩쓸려서 사람 마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애써 남희의 눈부신 몸매를 외면하며 또다시 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는 입으로 가져가려는
영후의 손을 어느새 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잡고 있는 남희가 있었다.
“감독님 마음은 알겠어요. 근데…”
“?”
“거긴 왜 그렇게 된 거죠?”
전혀 수줍음도 없이 커질 대로 커져버린 영후의 앞섬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남희 덕에
영후는 적잖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건… 그러니까 남자들은 다 이런 거에요. 머리하고, 마음하고는 상관 없이…”
“본능… 이란 거네요, 그쵸?”
“하지만… 꼭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그걸 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구요.”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할 수는 있는 거죠? 섹스.”
무슨 여자가 부끄러움도 모른 채 이렇게나 직설적인 단어들만을 골라 말한단 말인가.
어떻게든 이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영후였지만, 이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한
남희 앞에서 도망칠 틈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다칠지도 몰라요. 남희씨 마음…”
“사랑하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니까, 다칠 마음 같은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나누고 있던 대화 중 유일하게 남희는 영후에게 거짓말을 해 보였지만,
극도로 당황하고 있던 영후가 그 사실을 눈치 챌 리가 없었고,
이내 체념한 듯한 영후도 천천히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아…”
남희는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켜보았다.
영후가 겨우 티셔츠 하나를 벗었을 뿐인데도 드러나는 상체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탄탄한 가슴과 너무나 음영이 뚜렷한 조각난 복근은
운동에 전념한 남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었기에 남희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영후가 벨트를 풀어 바지를 벗어버리자, 흡사 말의 다리와 비견될 만큼
세세한 근육들이 허벅지 근처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고 그 다리 가운데에 자리한
영후의 그것은 이미 타이트한 사각 팬티에서 튀어나와 머리를 슬며시 내밀고 있었다.
그 모양을 바로 눈 앞에서 숨도 쉬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던 남희는 그러나
역시 궁금함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시선은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벌써… 나온 건가요? 정액… 이란 게?”
남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남희였지만, 그래도 책으로 접한 지식들은 충만했기에
지금 영후의 물건 끝에 맺혀 있는 맑은 물을 바라보며 묻는 것이었다.
“아…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커지면 조금씩 나오는 거에요.”
영후의 말에 남희도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그녀의 궁금증은 조금도 해소되지 못한 듯 했다.
“음… 조금쯤 더…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왠지 지금 이 상황은 연인들이 나누는 섹스의 과정이 아니라, 마치 인체의 신비를
탐구하는 자리인 것만 같아 어느덧 창피함도 느껴지지 않는 듯 했기에
영후는 남희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천천히 팬티마저 내려 보였다.
그제야 답답한 곳에 속박되어 있었던 영후의 그것은 튕겨나오 듯 갑작스럽게
남희의 눈 앞에 등장했고, 그 엄청난 크기와 굵기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분명 여자의 질은 신축성이 있기에 발기한 남자의 몸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지금 보는 그것은 그럴만한 크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영후의 밝은 피부 톤과는 너무나 다른 검붉은 색의 살갗과 핏줄,
그리고 근육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남희는 정말로 영후와는 상관없는
그저 다른 객체인 것만 같아 무서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처음 본 영후에게
이끌린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처음 본 영후의 물건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했다.
“헉!”
달아오른 방의 분위기 탓 이었을까.
남희는 하나하나 양해를 구하던 질문을 멈추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영후의 자지를
잡아보았지만 방심하고 있던 영후는 깜짝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놀라고 있던 건 다름아닌 남희였다.
‘이렇게나…’
하마터면, 잡자마자 놓을 뻔 했을 정도로 뜨거웠던 영후의 자지는 게다가 정말로
살아 숨쉬듯 맥박이 느껴졌고,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또한 맑은 물은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남희는 남은 한 손의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찍어보았다.
약간 점성이 있는 것도 같았고, 그렇게 나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손가락을 살짝 혀에 가져다 대어본 남희는 그러나 너무나 소량이었던지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었기에 이윽고 혀를 직접 영후의 그것에 대어보았다.
“남희씨… 지금… 뭐 하는… 흡!”
영후는 영후대로 지금 엄청난 흥분에 휩싸이는 중이었다.
이렇게 조신한 여자가 남자의 몸을, 그리고 성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궁금해
하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랄 지경이었는데, 아무리 궁금해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탐험을 하고 있으니 그 묘한 상황이 가져다 주는 흥분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높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저 혀로 귀두의 갈라진 틈 사이를 몇 번 핥아보던 남희는 그저 그 행위 만으로도
온 몸을 휘감는 짜릿한 느낌이 들어 너무나 놀라고 있었다.
진지하게 애무를 한 것도, 받은 것도 아니었음에도 느껴지는 짜릿함이 이 정도일 진데,
진짜 애무, 진짜 섹스를 하게 된다면 어쩌면 남희는 엄청난 느낌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남자 품에서라면 어쩌면
죽는 것도 행복한 일일 거라는 황당한 결론에 이르고 있는 남희였다.
“해… 주세요.”
방안의 열기 때문인지, 취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의 욕정에
달아올랐기 때문인지, 더없이 빨간 볼을 더욱더 물들이며 수줍게 입을 열었고,
설마 했던 말이 남희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영후는 더욱 당황하고 있었다.
“네? 남희씨… 지금 무슨 소리를…”
“부탁… 드릴게요.”
자신의 물건을 부여잡은 채 올려다보며 애원하는 남희의 얼굴을 보며 영후는 난감하기만 했다.
-
한참을 묵묵히 근명의 옆에 앉은 채 하연과 있었던 (물론 하연의 이름을 근명은 말하지
않았기에 윤지도 근명의 속을 태우고 있는 그녀의 존재가 하연이라고는 알지 못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윤지는 확실하게 말 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도 같았다.
“어쩜… 그 여자, 좋아하게 됐나 보다 오빠.”
“설마… 좋아하고 말고 할 거리도 없었는 걸 뭐. 게다가…”
“게다가?”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여태껏 그런 완벽한 남자는 또 없었기에,
도저히 싸워 볼 용기조차 나지 않는 ‘한 남자’ 떠올리며 쓸쓸하게 대답하는 근명이었다.
“그 여자는 벌써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구.”
“헤에… 골키퍼 있다고 골이 안 들어가진 않는다 뭐.”
이런 상황에서 축구에 관한 예를 들어주는 이 아이가 왠지 귀여워 보이는 근명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오빠 마음 알 것도 같애. 뭐랄까,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아끼고 싶어지는 거,
그런 기분 아냐? 그 여자가 오빠 맘에 들어오기 전까진 그저 여자라면 먼저 하고 보던
그런 거 하고는 다른 거… 그래서 전에 없던 감정 때문에 머리 아프고 그런 거 아닌가?”
“너?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윤지는 이야기의 근원이 되었을 혜미를 잠시 떠올려 봤지만
이내 털어버리고는 빙긋 웃으며 대충 둘러대 보았다.
“나야 뭐, 여기에 있으면 별의별 남자들 다 만나게 되는 걸?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 뭐.
그저 몸에 대한 욕구 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
뭐 그런 것들에 대해 또 누구에게 얘기하고 풀 수 있겠어? 너무 가까운 사람한테는
꺼내보지도 못할 것들일 테고, 그렇다고 또 생뚱맞게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는
더더욱 없을 거 아냐. 그러니 이런 곳에 있는 나를 찾아 오는 거 아니겠어?”
“하긴.”
윤지의 말을 듣고 난 근명은 오랜만에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실은 근명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윤지와 같이 고민을 들어주고, 나름대로의 조언도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였다. 하지만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근명은
친구를 만들 여유조차 없었기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윤지가 참 고마웠다.
“그럼 어쨌든 오빠 고민은 해결 된 거지?”
“뭐 일단은.”
“그럼 우리 이제 뭐 할래?”
은근히 근명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곧 진행될 ‘그것’을 예상하며 윤지가 물었지만
근명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의외였다.
“음… 우선 좀 잘까?”
“그냥 잠? 섹스 말고? 이렇게 누워서 자는 잠?”
설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을 자자는 말인지 몇 번이고 다시금 확인하려 드는 윤지를
안심시키려는 듯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여 주며 근명은 대답을 했다.
“응. 너도 내 옆에서 같이 자주면 더 좋고.”
그제야 이 남자, 진심이구나 싶어진 윤지는 밝게 웃으며 근명에게 매달려 보았다.
“당근이지 오빠. 잊었어? 오늘은 내가 오빠 애인이잖아~”
이내 근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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