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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도 눈물을 흘린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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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충격으로 지수가 폭락을 하긴 했지만, S전기의 경우에는 실적 모멘텀이 살아 있습니다. 더구나 시장 전반적으로 외인들의 매도 세에도 불구하고 S전기는 오늘도 외인들이 매수에 가담 할 만큼 수급도 좋아 보입니다. 또한 전기 자동차, 에너지 바이오 등 미래 유망산업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실적 모멘텀이 부각되므로, 좋은 흐름이 기대 됩니다. 챠트를 보겠습니다.”



생방송으로 방송되는 카메라 앞에서도 기철의 표정에는 긴장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벌써 수 년 째, 증권 방송에 출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제 집처럼 편안하게 방송을 즐기고 있었다.



따다닥.



기철의 오른손에는 마우스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눈에는 S전기 회사의 종합 챠트가 들어왔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기철은 증권 방송에 주식 전문가로 출연을 해서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종목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 보시는 바와 같이 S전기는 작년에는 실적이 좋지 않아서 주가의 하락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쌍 바닥으로 지지를 받고 최대 매물대였던 3만원을 거래량이 동반 된 장대 양봉으로 강하게 돌파했습니다. 추세 전환이 이뤄진 후에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이동평균선이 역배열에서 정배열로 바뀌었고, 1분기 실적이 호조를 이루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2분기 실적도 큰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외인과 기관들의 쌍 끌이 매수도 최근에 이뤄지고 있어서 아직까지도 가격 메리트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매수가 4만 6천원, 목표가 6만원, 손절가는 4만 2천원 드리겠습니다.”



“최기철 전문가님 감사합니다.”



S전기에 대한 종목 상담이 끝나고 카메라가 방송 진행자를 쫓았다. 그리고 기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방송에서의 자기 역할이 끝난 기철은 물건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증권 방송에 집중하고 있는 PD를 보며 눈인사를 한 후, 방송 세트장을 나왔다. 자신의 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하면서 기철은 휴대폰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김 팀장. 오늘 뭐 별일 없지?. 오... 그래?.”



기철은 소위 재야 고수로 불리는 주식 전문가였다. 30살부터 세상에 알려진 기철은 약 2년 간 각 증권 회사의 모의투자에서 전부 3위 내에 입상을 했고, 1천만 원으로 주식을 해서 100억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주식을 하는 모든 개미의 우상이 되었다. 일명 슈퍼개미 최기철이라 불렸으며, 그 후 기철은 자신의 매매기법 등을 정리하여 책으로까지 출판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월요일 추천 종목으로는 M 전자, T 타이어, K 피자....”



기철은 증권 방송에 출연하는 주식 전문가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직접 ‘증권대왕’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기철이 개설한 증권 카페에는 이미 20만 명의 회원들의 가입이 되어 있고, 그 중 일부 개미들은 기철에게 유료로 종목 추천을 받고 있었다. 유료로 종목 추천을 받는 개미들이 기 천명이 넘었기 때문에 기철의 사무실에는 그가 고용한 직원이 20 여명 정도가 유료 회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알았어. 그러면 오늘은 내가 사무실을 못 가니까... 김 팀장이 알아서 해줘. 이만 끊는다. 수고해.”



보통은 증권 방송에 출연한 후 기철이 향하는 곳은 그의 사무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기철은 자신의 차에 올라탔지만, 시동을 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 올 때가 됐는데...”



홀로 중얼거린 기철의 얼굴에는 초조한 모습이 역력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에서도 여유가 넘쳤던 기철의 모습이 아니었다.



“.....”



차 안에서 누군가의 연락을 한참이나 기다린 기철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한 것은 하나의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 완료.



단 두 글자였지만, 기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금 자신에게 온 문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삭제를 했다. 그리고 차에 시동을 건 후, 가쁜 마음으로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기철의 차가 도로로 나섰지만, 기철은 엑셀레이터를 강하게 밟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길가로 서행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철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저기 있군.”



기철이 찾는 것은 다름 아닌 공중전화였다. 공중전화를 발견 한 기철은 정차를 한 후, 차에서 내려 공중전화로 향했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선 기철은 수화기를 들고 동전 몇 개를 넣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신호음이 기철의 귀에 들려왔고, 이내 곧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기철의 귀에는 상대방의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 형이야?.



“그래, 나 기철이야.”



- 형. 우리 이번에도 성공했어. 부산 지점을 끝으로 전량 매도했고, 약 210억 정도 남긴 것 같은데... 하하하.



수화기를 통해서 들뜬 사내의 말을 들은 기철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



“자, 건배.”



“건배.”



약 2시간 전에 기철과 통화를 했던, 현일은 기철의 부름에 수원에서 서울로 달려왔다. 그리고 기철과 흔히 볼 수 있는 호프집에서 건배를 하며 축하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형. 정말 대단해... 이번에도 성공일 줄이야... 210억이라니...”



“쉿.”



기철과 현일은 호프집의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들뜬 현일의 목소리가 커지자, 기철은 주위를 둘러보며 현일에게 목소리를 낮출 것을 지시했다. 그제야 현일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주위를 살핀 후 조용히 기철에게 말을 했다.



“진짜... 내가 형을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면.... 진짜 끔찍 그 자체야.”



“현일아. 아직 다 끝난 거 아닌 거 알고 있지?.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잖아.”



“당연히 알고 있지.”



“넌 너무 들 뜨는 게 문제야. 앞으로도 나랑 계속 일하려면... 자신을 제어 할 수 있어야지.”



“알았어. 형.”



현일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철 역시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는 또 다시 승리한 뿌듯함이 한 가득이었다. 기철은 이제 확신이 들었다. 벌써 세 번째였지만, 금융감독원은 자신을 잡아내지 못했다. 이제는 하나의 작품이자, 예술이라고 칭해도 될 만큼 완벽한 작전이었다.



“캬하하. 좋다.”



기철이 세 번이나 성공한 것은 일명 주가조작으로 인한 시세 차익이었다. 수 개월간의 작업 끝에 이번에도 무려 210억의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세 번째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했음을 알리는 날이었다.



“진짜 형 말대로 돈 벌기 참 쉽네. 눈 먼 돈들이 정말 많아.”



“크큭.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과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세상에는 눈 먼 돈들이 많지. 눈 먼 개미들도 많고...”



“나도 형 때문에 돈을 많이 벌긴 하는데... 그래도 형이 더 부럽다. 형은 평소에도 눈 먼 돈을 많이 버니까.”



“크크.”



현일의 계속 되는 ‘눈 먼 돈’이라는 말에 기철은 웃음이 나왔다. 그랬다. 세상에는 눈 먼 돈도 많고 눈 먼 개미들도 많았다. 특히 눈 먼 개미들이 많기 때문에 기철은 아주 큰돈을 쉽게 벌고 있었다. 더 이상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개미들이 기철의 돈을 불려주고 있었으니까.



“바보 같은 개미들이 많지. 아니, 개미는 다 바보야. 그런 개미들이 있으니, 지금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거지. 내가 이 위치까지 올라오기에는 힘들었지만, 올라오니까 돈 버는 게 너무 쉽잖아. 방송에 나온 내 말 한 마디에 주식을 사는 바보 개미도 있고, 내가 먼저 선점한 주식을 돈을 받고 추천해주면, 개미들이 주가를 끌어올려주지. 그러면 난 매도를 하고, 우리 유료 회원님들에게 매도 사인을 주지. 이중으로 돈을 벌 수 있어. 나도 주식을 하면서 많은 돈을 잃어보고, 큰 시련도 겪었지만, 이제는 난 주식 시장에서 불패야. 왜냐, 나를 따르는 개미들이 아직도 많으니까. 없어지지 않아. 절대... 바보 개미들은 매년 새롭게 또 탄생하니까...”



“하하.”



삼 단계로 이뤄진 기철의 돈을 버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증권 방송에 출연해서 일반 주식 투자가들에게 신뢰감을 받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고, 기철을 추종하는 개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증권 카페를 만드는 것이 그 두 번째였으며, 그 중 일부에게 기철은 유료로 종목 추천을 해주는 것이 마지막 단계였다. 더구나 개미들은 기철이 먼저 선점한 주식을 추천하면 앞 다퉈서 그 주식을 매수했기 때문에 주가는 오를 수 밖 에 없었고, 기철의 계좌는 더욱 더 수익률이 높아졌다.



“사람들은 참 바보 같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될 문제인데. 돈에 욕심에 눈이 다들 멀었으니.”



“그렇지. 나 역시 많은 주식 경험이 있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돈 버는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예전에 모의투자에서도 1등을 밥 먹듯이 하고, 물론 과장되게 말하긴 했지만 스스로 꽤 많은 수익도 낼 수 있었지. 1천만 원 가지고 100억을 번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5억으로 시작을 해서 50억까진 벌어 봤으니까. 그 후에는 개미들이 나에게 돈을 벌어다 줬지. 솔직히 그냥 혼자 주식을 해도 수익은 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역시 주식은 100%가 없다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난 불패지. 생각해 보면 혼자 주식해서 100%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그 누가 증권방송에 전문가라고 나오고, 증권 카페 같은데 만들어서 종목 상담, 종목 추천을 해주겠어?. 그냥 혼자 주식 열심히 하면서 돈 벌면 되는 건데... 그런데 개미들은 그걸 몰라. 그래서 바보지. 그러니까 그런 바보들을 이용해서 내가 먹고 사는 것이고... 큭.”



“난 그래도 형 실력을 믿지만... 텔레비전에 나온 전문가라는 녀석들... 다 개미들 피 빨아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 오를 주식이면 나만 알고 있어야지. 왜 남들에게 알릴까. 주식 시장에서 정보는 적은 사람이 알수록 더 가치 있는 법인데... 개미들은 이 간단한 이치를 몰라. 상식인데...”



현일의 말을 듣고 기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묘한 웃음을 다시 지었다. 자신 역시 현일의 말대로 개미들 피를 빨아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뭐 어떠랴. 인생은 실전이고 연습이 없는데, 거기에서 당한 사람들이 바보라고 생각하는 기철이었다.



“형.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형은 왜 작업을 하는 거야. 사무실 운영하면서도 돈 많이 벌 수 있으면서...”



현일은 기철이 주가조작을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기철은 증권 카페를 통해서도 충분히 큰돈을 벌고 있었다. 기철 밑에서 일하는 직원 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는데, 왜 범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까지 주가조작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다. 편안하게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왜 인생에 리스크를 거는 것일까.



“돈...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당연히 돈 많으면 좋지. 그런데 위험이 따르잖아. 굳이 모험을 걸 이유가 있어?.”



“재밌잖아. 그리고... 난 이겼잖아.”



현일은 기철의 대답이 이해가 갈 듯 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범법을 하면서도 재밌다라는 대답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형은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닌가봐. 그건 그렇고 이번 작업도 정말 두근거렸는데... 형 대단해. 뉴스 보면 걸리는 사람들도 많던데... 형의 계획 진짜 완벽한 것 같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하나의 작품이자 예술이지. 참 점 조직이 효과가 좋은 것 같아.”



사실 기철은 두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양지에서는 국가에 세금도 잘 내는 ‘증권대왕’이라는 카페의 주인이기도 했지만, 음지에서는 1-2년에 한 차례씩 주가조작을 해서 큰 시세 차익을 남기는 주인이기도 했다.



특히 주가조작을 하는 집단은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 조직이었고, 수년간의 노력 끝에 기철이 믿을만한 사람으로만 꾸려졌다. 이 비밀 조직원들은 기철과 현일만이 전부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이 비밀 조직이 전국 5곳에 점조직으로 형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만 알 뿐, 나머지 조직원들은 서로 알지 못했다. 오로지 기철의 지시에 따른 현일의 명령으로만 움직였고, 더구나 서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서로를 알수록 최악의 상황이 닥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비밀조직의 연락망은 주가를 조작 할 때 만 가동이 되는데, 철저하게 휴대폰이나 메신저로만 연락을 했다. 물론, 휴대폰이나 메신저는 조직원들의 명의를 절대 쓰지 않았고, 이것도 주기적으로 계속 바꿨다. 특히, 더욱 주의를 요할 상황인 경우에는, 기철처럼 철저하게 공중전화만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철과 현일의 지휘 아래, 이들 점조직은 서로 다른 지역에서, 그리고 서로를 모른 체, 계속 바뀌는 휴대전화와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을 하며 주가조작을 했고, 이제까지 세 번 모두 성공을 했다. 그동안 수백 개의 차명계좌만 가지고 주가조작을 하던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조직이면서도 서로의 연결점을 찾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수 백 억의 시세차익을 남겨도 금융감독원에서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던 기철만의 주가조작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현일아.”



“응.”



“형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뭐야... 이런 날 단란하게 놀고 그래야지.”



“너나 해. 임마.”



“참... 형도 결혼하더니 사람이 변했단 말이야. 어떻게 1년 만에 이렇게 변하지?.”



확실히 현일이 보기에 기철은 1년 사이에 많이 변해 있었다. 평소에 돈을 많이 버는 기철이었기 때문에 세상 그 누구보다 유흥업소에도 많이 들락거렸다. 그리고 기철은 여자도 많이 밝혀서 넘치는 돈으로 많은 여자를 사기도 했었다. 그런 기철이 1년 전에 결혼을 한 뒤로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 세상에 단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인데, 현일은 이런 기철의 변화가 볼 때 마다 신기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니.



“형도 결혼 하더니, 참 재미없는 사람으로 변했어. 형수가 그렇게 좋아?.”



“풋... 됐고. 현일이 너도 좀만 더 참아라. 이제 가장 중요한 계획을 실행해야지. 네가 내 분신이나 마찬가지인데... 실수하면 안 되잖아.”



“돈을 그렇게 벌었는데... 한 달이나 더 참아야 한다니...”



현일은 불만이 가득한 소리로 대답을 했지만, 기철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기철이 말한 마지막 계획,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계획은 바로 돈을 인출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가 조작을 하면서 썼던 차명계좌에서 벌어 놓은 돈을 인출하는 것인데, 이게 결코 쉽지 만은 않았다.



설마 했다가 당하는 게 인생사임을 아는 기철이기에게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210억이라는 돈을 1천만 원 이하 단위로 인출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인데, 한 번에 큰돈을 인출하지 않은 이유는 금융감독원의 눈을 속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각 조직원들이 수백 개의 차명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기간도 최소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잡아야 했다.



“암튼 수고해주고... 이만 간다. 그리고 이번에도 인출 전에 휴대폰 다 바꾸라고 지시하고...”



“알았어. 작업 전에 연락할게.”



“그래.”



현일에게 작별 인사를 한 기철은 호프집을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에 가서 차에 오르기 전에 휴대폰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아내인, 연희에게 전화를 했다.



“왜 안 받지?.”



기철은 자신의 아내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조금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휴대폰을 두고 집 앞 마트에 가는 일도 종종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출발 해볼까.”



아내인 연희를 보기 위해서 집으로 가는 기철은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내만 생각하면, 아내만 보면 마냥 행복한 기철 일만큼,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애처가였다. 심지어 기철의 인생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과 함께, ‘아내를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일 정도였으니, 그의 아내 사랑은 실로 대단할 정도였다.



주식이나 방송은 둘째 치고 범법인 주가조작을 할 때에도 여유가 넘치는 기철이었지만, 아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급한 마음에 차에 시동을 걸고 강하게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



휘리릭.



기철은 자신과 아내의 보금자리인 아파트에 도착하자, 절로 기분이 좋아서 휘파람을 불렀다. 차를 주차 시키고 차에서 내린 후 가벼운 걸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아내인 연희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기철은 자신이 하는 일도 다 잘 풀렸고, 오늘은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주말 동안 아내인 연희와 오붓한 시간을 가질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유쾌했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기철에게는 그게 인생의 전부였다. 심지어 기철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도 - 범법인 주가 조작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 정도로, 돈에 미친 기철이 - 아내를 위해서라면 모두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철이었다.



딩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에 도착한 기철은 1001호인 자신의 집 현관문을 바라봤다. 이 문만 열고 들어가면 자신이 가장 보고 싶어 하고 사랑하는 여인이 반겨 주리라.



띠. 띠. 띠. 띠.



현관문 여는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고, 기철은 문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기철은 당황스러웠다. 예상 밖에도 기철을 반기는 것은 아내인 연희가 아니라, 어두운 집안이었다. 불도 켜지 않아서 집안 곳곳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야.”



기철은 아내인 연희를 불러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기철은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집안, 그리고 한 번 뿐이었지만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던 아내.



타탁,



황급히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간 기철은 전등 스위치를 찾아서 형광등을 켜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스위치를 눌러도 형광등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기철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아내인 연희에게 어떤 무서운 일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자기야.”



아내 연희를 부르며 어두운 집안 곳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철의 눈에는 아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기철은 휴대폰으로 아내에게 다시 전화를 해보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신호도 가지 않았다. 연희의 휴대폰이 꺼져 있었다.



“뭐야... 자기야...”



기철은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출근 전에 아내에게 외출을 한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더구나 휴대폰까지 꺼 놓을 정도로 자신을 걱정 시키는 아내도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에게 다정다감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신경 써 주던 아내가 아니었던가.



“무슨 일이지....”



기철은 침착 하려고 애를 썼다. 이럴수록 머리를 냉정히, 차갑게 해야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해 내고, 또 결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집중도 되지 않았다. 아내가 집에 없고, 연락이 되지 않으니, 기철은 미쳐버릴 정도로 불안했다.



“겨... 경찰.”



경찰에 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기철은 휴대폰을 다시 빼 들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가 버렸다. 마음이 급한 기철은 거실로 달려 나왔다. 거실에 일반 유선 전화가 있기 때문이었다.



“실종... 그래 실종...”



거실로 달려 나가면서 기철은 아내가 실종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분명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될 아내가 아니었다. 만약에 휴대폰의 배터리가 나갔더라면, 최소한 다른 전화로도 자신에게 연락을 했을 아내였다.



“경찰... 번호가...”



37년을 살면서 그렇게 주입 받았던 112라는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은 기철이었다. 그만큼 당황하고 있던 기철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한 대 내리쳤다. 그제야 기철의 머리는 112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기철은 유선전화기의 수화기를 들고 112 번호를 차례대로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거실 한쪽 벽에 걸려 있던 TV가 자동으로 켜졌다. 기철은 놀라서 전화를 하다말고 스스로 켜져 버린 TV를 쳐다봤다. 어두운 거실에서 TV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은 매우 밝았는데, 화면 전체가 온통 하얀색이었다.



“..........”



기철은 무서워졌다. 아내가 TV가 자동으로 켜지도록 예약을 해놨던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켜진 TV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수십 개의 채널이 있을 터인데, 오로지 하얀색만 나오는 채널이 있었던가?.



“무... 뭐야...”



전화를 하려다 말고 갑자기 켜진 TV를 쳐다보던 기철은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했다. TV 화면에 가득 찬 하얀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기철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기철은 정신을 바짝 차린 후, 다시 TV 화면을 봤는데, 이제야 하얀색이 움직인 게 아니라,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얀색이 사라지면서 무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어... 어... 어...”



화면에서 하얀색이 절반 정도 사라졌을 때, 기철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 TV 화면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꾸... 꿈....이..... 아니...”



얼마 후, TV 화면에서 하얀색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또렷하게 어느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기철은 매우 놀라서 목소리도 잘 나오지 못했다. 놀랍게도 TV 화면에서 자신의 아내인 연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기철은 천천히 TV 화면으로 다가갔다. TV 화면에 가까워질수록 기철의 동공은 커져만 갔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봐야했기 때문이었는데, TV 화면에 가깝게 다가갈수록 기철은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그래도 설마 했는데, TV 화면에 나오는 여자는 아내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연희야!!!!”



TV 화면의 코앞까진 다가 간 기철은 결국 아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어야 했다. TV 화면 속에 나오는 아내의 모습은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기철이 놀랄 수 밖에 없었던 점은 그 아내의 몸이 눈이 가려진 채로 의자에 결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진심"은 며칠 안에 새로 글을 올릴 거고요. 그동안 연중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진심이라는 글에서 해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쉬고 있는 동안 짬짬이 써서 나름대로 완결을 지은건데,

진심이랑 같이 연재를 하게 될 것 같네요.



조금씩 수정만 해서 올리면 되니까, 큰 무리는 없을 것 같고...

혹시나 재밌게 보셨다면, 한 글자씩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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