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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짓는 아내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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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 사무실은 특히나 축 처지는 분위기다. 일주일의 시작을 활기차게 시작하는 월급쟁이는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주말에 즐거운 광란의 밤을 보낸 뒤 다시 현실로 뚝 떨이지면 그 갭의 차이 때문에라도 축 처진다.
하지만 이 축 처진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괜히 주 5일제가 있는 게 아니고, 괜히 업무 효율이라 단어가 있는 게 아니듯 월요병을 금방 떨쳐낸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로 돌아간다. 다만 이들 중 몇몇만이 고민에 휩싸인 듯 업무조차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하아…….”
그 중 한 명은 바로 정나은의 남편 안정수이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그는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
고민의 이유는 바로 아내 때문이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부동반의 회식이 있던 밤. 자신은 술에 잔뜩 취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애매모호하다. 분명 의식은 끊겼고, 다음 날 늦은 오후나 돼서야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자신이지만 한 가지 묘한 것이 신경 쓰인다.
잠결에 들은 것인지, 아니면 비몽사몽간에 아내와 사랑을 나눈 것인지 모르겠지만 귓가에 남아 있는 아내의 달콤한 신음소리와 일정한 주기로 느꼈던 어떠한 진동.
자신은 분명 술을 마시면 이상하리만치 아내에게 엉겨 붙긴 해도 설마 대리기사가 있는 자동차 안에서 사랑을 나눴을 거라 생각은 안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그렇다면 아내가 관계 후 자신까지 씻기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자진해서 바람 필 여자는 절대 아니고……그러면 한 가지 밖에 없는데…….’
자신도 취했겠다. 아내는 자중하긴 했어도 남자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막을 도리가 없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해도 여자는 여자다.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다고 안 당하면 세상만사 평화로울 거다.
‘만약 당했다고 해도 그 자존심 강한 아내가 조용히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당하더라도 이를 박박 갈 여자다. 남편이 돼서 그날 뭔 일 있었냐고 묻기도 이상하다. 그 자존심 강한 아내는 자신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허리를 작살낼 여자니깐.
그렇기에 안정수는 이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며 고민에 휩싸여 있는 거다. 혹시 몰라 자동차도 확인해봤지만 깔끔하기 그지없어 자신의 의심이 괜한 걱정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내의 행동거지도 이상하지 않고, 오늘 아침에만 해도 깨가 쏟아질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거 참…….”
긁어 부스럼일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안정수는 자신의 가슴 속에 피어난 의심이라는 싹을 키워야 할지 그대로 둬야할지 고민하며 일단은 가슴 속 깊이 덮어두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제까지 그랬듯 자신의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믿음은 이정도 의심으로 흔들릴 정도로 작은 게 아니었다.
안정수처럼 얼굴에 근심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는 행동이라곤 평소와 똑같이 업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태평한 사람도 고민 아닌 고민에 휩싸여있다. 바로 영업부 부장인 김우영이다.
‘흠……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말이지.’
김우영이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 폰 화면에는 얼마 전에 찍은 정나은의 사진이 비춰지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싸지른 하얗고 질척한 욕망으로 온 몸이 더러워진 채 그렇게 능욕 당했으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쏘아보고 있는 강한 눈빛이 참 마음에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 때문에 걱정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자존심 쎈 년은 첨이네.’
분명 꺾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달콤한 신음을 내지르며, 쾌락에 푹 적셔져 실신까지 한 유부녀가 정신을 차리면 그 콧대 높은 자존심도 정신을 차리는지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나에게 한 방 크게 먹이고 나면 신고를 하려 했겠지만 이번에 약점을 크게 잡았지.’
하지만 이 약점도 얼마든지 떨쳐내려면 떨쳐낼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쥐를 물어뜯는 법이다. 게다가 이 쥐는 어찌나 고고한지 물어뜯기 시작했다간 자신이 죽더라도 고양이를 물고 지옥으로 손잡고 들어갈 그런 쥐다.
김우영은 그래서 고민이다. 보면 볼수록 배아래 깔아뭉개 높은 콧대를 짓눌러 타락시키고 싶은데 잘못했다간 자신이 깔아뭉개지게 생겼으니 여기서 슬슬 손을 떼야할지 아니면 철저하게 짓눌러야할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약점 잡고 한, 두 번 깔아뭉개면 알아서 기던데…….’
자신이 질릴 때까지 자포자기를 하는 유형도 있었고, 아예 마음을 바꿔 즐기는 쪽으로 마음먹는 유형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한 탓일까?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가 따로 없다.
‘이 이상 철저하게 하려해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기를 하자고 해도 저번처럼 어수룩하게 걸려들지 않을 것이고, 잠들었다고 해도 남편 곁에서 철저하게 몸을 능욕했는데도 마음이 꺾이질 않는다. 김우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들기며 고민에 잠긴다.
‘그나저나 박경원 사원은 별 낌새 없나?’
최 사장이 어련히 잘 했겠지만 정나은 때문에 심란한 마음이 전염이라도 되는지 자연스레 눈이 간다. 업무를 보면서도 그 호탕한 성격은 어디 안 가는지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업무를 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눈치 채지 못한 듯싶다.
‘이번엔 얼마나 싸질렀을까?’
최 사장의 성적 취향 때문에 간간이 근황 보고하는 게 참 힘들다. 자신의 씨로 임신했을지도 모르는 여성의 근황을 꼭 알려줘야 하니 그걸 자연스레 알아보는 것도 참 고역이다.
‘편하기로 따지면 김수진 같은 여성이 편한데……이 와중에도 정나은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성으로써의 매력은 수수하면서도 그 육감적인 몸뚱어리를 가진 김수진이 더 탐하는 맛이 있지만 타락시키고 싶으면서도 계속 생각나는 건 정나은이다. 정말이지 묘한 매력이 있는 여성이다.
“후~고민해봤자 답도 안 나오는군. 일단 일이나 해볼까?”
김우영은 외근 나간다고 사원들에게 말한 뒤 고객을 만나러 회사를 나섰다. 회사를 나섬과 동시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자신의 고민의 근원에게 메시지를 날린 뒤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정나은은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남편 앞에서도 그랬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며 오늘도 고객을 만나며 하나의 계약이라도 더 따기 위해 발 빠르게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 당했을 때와는 다르게 약간 불편해 보이지만 당당한 그녀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띠링
영업하는 사람답게 메시지가 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바로 확인한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그 내용을 확인하자 고운 얼굴이 확 찌그러지며 자신의 불쾌한 기분을 있는 대로 드러낸다.
“어쭈? 아주 이젠 오라 가라 신났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우영 부장이었다. 2시간 정도 후 시내 유명한 카페에서 얼굴 좀 보자는 간결하면서도 명령조의 메시지다. 정나은은 약점이 잡혔다고 해도 이렇게 명령조로 나오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곧이어 스마트 폰이 또 다시 울리며 메시지를 전송받는다.
“……까득.”
정나은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이를 갈았다. 뒤이어 전송된 건 그날 저녁에 찍힌 사진 중 하나였다. 그것도 굴욕적으로 사용 후 그 내용물이 든 콘돔을 자신의 얼굴에 집어던진 후 찍은 사진이다. 이때만 해도 실신직전인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의 여자로써의 달아오른 얼굴에 몸의 확하고 달아오른다.
‘이런 얼굴이란 말이지?’
새삼 신기하면서도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는 감각을 억누르며 스케줄 체크를 해본다. 문제없다. 다만 만난다 해도 현재로썬 뾰족한 수가 없는 정나은으로썬 아직 이 만남이 달갑지 않다.
“쯧,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만나야지.”
한껏 치켜 올라간 눈매는 내려올 생각을 않고, 그녀의 입에선 혀를 차는 소리가 새어나오며 그녀의 기분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주눅 든 기색도 없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시원시원하게 길거리를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능력 있는 여성의 모습 그 자체였다.
김우영은 재빨리 일을 하나 끝마치고 진즉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며 정나은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오전 회사에서 고민에 휩싸였던 모습은 일체 남아있지 않고, 유부녀와의 밀회를 즐길 생각에 콧노래까지 흘러나온다.
‘응? 왔군.’
카페 입구를 눈 빠져라 바라본 보람이 있다.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약속시간을 칼처럼 지키며 들어오는 모습이 눈의 보양을 준다.
능력 있는 여성의 제복 모습이란 건 남성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깨끗하게 빼어 입은 검은 정장 위로도 알 수 있는 부풀어 오른 가슴이나 잘 발달된 골반은 그녀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탄력적인 엉덩이를 자연스레 흔들게 해주니 어느 남성이라도 시선이 안 가겠는가?
안경까지 써 깐깐하면서도 지적으로도 보이는데 일부러 연하게 한 화장 때문인지 청순미까지 살살 흘러나오니 저런 여자를 어찌 깔아뭉개지 않고 배기겠는가?
김우영과는 달리 정나은은 그를 발견하자 미간이 확 좁혀졌지만 짜증내는 모습도 매력적이니 이것 참 곤란할 따름이다.
‘정말로 어떻게든 굴복시키고 싶은데…….’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이 올곧은 걸음걸이로 다가와 반대편에 앉는 정나은의 모습이 고고하기까지 하다. 여성이라면 자신을 억지로 깔아뭉갠 남자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태도로 있을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다.
“그래서 무슨 용무인데 바쁜 사람 오라가라야?”
정나은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가시가 담긴 말로 김우영을 쏘아붙인다. 김우영은 서두르지 말라며 웃음으로 무마한다. 김우영은 느긋하게 그리고 끈적한 눈길로 그녀를 뜯어본다. 자신의 눈길을 알아 챈 것인지 한층 기분 나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승부수를 던져볼까?’
역시 눈앞에 유부녀를 앉혀놓으니 이성보단 본능이 더욱 강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손을 떼야하나 고민하던 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고 어떻게든 자기 입맛대로 굴려보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역시 그 맛을 못 잊겠단 말이야? 그런 의미로 어때? 슬슬 너도 내 맛을 몸이 기억할 때가 됐는데.”
“미안하지만 조금도 기억 안 나서 말이지.”
“그야 그러시겠지. 결국 이번엔 실신해버렸으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정나은은 김우영의 조롱에 울컥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확 열이 올랐다가도 금방 머리를 식히며 차분히 자리를 지킨다.
‘이것 참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기분 탓인가?’
자신의 도발에도 금세 차분함을 되찾는 모습에 김우영은 입맛을 다신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정면승부정도 밖에 길이 남지 않았다.
‘아니면 여럿이서 바보가 될 때까지 굴리는 것뿐인데…….’
그러자니 자신의 화려한 여성편력에 금이 가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 맛있는 걸 나눠먹는 것도 싫다. 치열하게 싸우는 이성과 본능의 싸움에서 결국 본능이 이겨버렸다. 이런 여자를 또 어디서 만나겠는가? 이쯤 되니 서로 자존심 문제다.
“허허~좋아.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버틸 줄은 몰랐어.”
“……흥.”
정나은은 새침한 고양이처럼 코웃음 칠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가 파르르 떠는 걸 보니 기분 나쁜 것 같진 않다. 김우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른 뒤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래서 말이지. 난 네년을 이리저리 내 입맛대로 굴리고 싶거든? 그런데 참 그게 힘들어. 그래서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어?”
“내 몸을 마음대로 굴리게 하겠다는 남자의 제안을 들을 것 같아?”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지난번처럼 내기를 하자고. 어때?”
“지난번엔 취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달라.”
내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고 있자니 어려워질 법도 싶지만 그럼에도 이 여자는 반드시 자신이 제안하는 내기에 응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호시탐탐 어떻게 고양이를 물어뜯을지 고민하는 쥐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깐.
“넌 나에게 받아내야 할 것도 있고, 서로 이기는 내기를 하자 이거야. 한 달. 딱 한 달만 내가 하라는 대로 엉덩이를 흔들어. 한 달 안에 네년을 굴복시켜주지. 만약 한 달이 지나도 그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면 지금까지 찍은 사진 전부 지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거래처를 넘겨주지. 그 뒤에 서로 우리는 만나지도 않는 사이로 돌아가자고.”
한 달 동안 자기 입맛대로 굴려도 굴복하지 않는 년이라면 자진해서 떨어져나가는 게 좋다. 정나은은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르겠다. 그저 무표정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다.
‘하지만 덥석 물지 않고 어떻게 하려고?’
자신에게 찍힌 사진은 받아야 한다. 물론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자신에게 한 방 못 먹이고 이 관계가 끝나는 게 더 열 받을 그녀다. 그렇기에 거래처라는 미끼는 자신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건수이며, 어떤 의미론 그녀에게 주는 입막음 비용인 셈이다.
“그 내기는 내가 너무 손해인데? 날 한 달 동안 가지고 놀 거면서 겨우 거래처 하나? 장난해?”
“그렇게 쎄게 나와도 되나 몰라? 이래봬도 많이 숙이고 들어가 줬건만…….”
김우영은 보란 듯이 스마트 폰을 들고 흔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나은의 얼굴에는 동요나 짜증이 묻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한 미소가 입가에서 묻어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래처 전부와 남편의 승진.”
“뭐?”
“귀가 막힌 거야? 거래처 전부와 남편의 승진. 그러면 한 달 동안 충실하게 엉덩이를 흔들어주지. 물론 이 관계가 끝난 뒤에 신고도 안하겠어.”
김우영은 그녀의 당당한 요구에 허탈한 웃음이 올라온다. 궁지에 몰리고 약점까지 잡힌 이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을 돈에 팔지 않겠다는 뜻이다. 거래처라는 건 영업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힘겹게 개척하며 걸어온 길이자 신뢰의 증표다. 그걸 남에게 건네주고 이쪽과 거래하라고 설득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걸 전부란다.
그녀는 몸과 자존심을 걸었고, 자신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회생활과 신뢰를 내놓으란 소리다. 차라리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풋! 크크크큭! 이거 진짜 걸작이군.”
김우영은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도저히 막지 못하겠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끝까지 자기 머리 위에서 춤추겠다는 이 당돌한 여자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지.’
한 방 먹이기 위해 살짝 틈을 보여줬더니 아주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채 그 탄력적인 엉덩이를 흔들며 자신을 놀리고 있으니 안 받아줄 수 없지 않은가.
“좋아. 그 내기 받지.”
“훗! 한 달 동안 그 비루한 몸으로 용 써보라고.”
“상세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김우영과 정나은은 평화롭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고풍스런 카페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서로에게 쏘아대며 서로를 물어뜯을 이야기를 나눈다.
둘 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답게 내기에 대한 상세한 것을 조목조목 따진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세 치 혀에는 독을 잔뜩 바른 검을 날카롭게 세운 채 서로의 인생을 건 내기를 시작했다.
하늘은 짙은 밤의 장막이 드리운 지 오래다. 안정수는 오늘 하루 아내에 대한 고민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멍하니 있을 때도 많아 하루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밀리고 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진해서 야근중이다.
‘배고픈데 커피라도 마실까?’
나가서 뭔가를 사먹고 오자니 차라리 후딱 업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속 편할 것 같은 안정수는 텅텅 빈 사무실을 뒤로하고 탕비실로 걸음을 옮긴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자괴감도 든다.
‘그냥 내일 처리할 걸 잘못했나?’
그윽하게 올라오는 향기로운 커피 향을 느끼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낸다. 신경과민인지 오랜만에 찾아온 두통 때문에 더욱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커피에 설탕을 더욱 투하해 달달하게 마시며 지친 몸에 당분을 주입해도 한 번 가라앉은 기분은 영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인다.
“에잉~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퇴근 할걸.”
컴컴한 사무실에서 혼자 궁상맞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김우영이 영업부 부장으로 와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자진해서 자리를 지키지 않으니 급한 일이 아니면 다들 칼 퇴근해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안정수는 손에 든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도 기분이 가라앉아있으면 그냥 퇴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가서 예쁜 마누라나 끌어안고 자야겠다.’
자신의 고민도 아내 얼굴을 보면 씻은 듯이 날아갈 게 분명하다. 안정수는 커피를 후륵 마시고 탕비실에서 퇴근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사무실엔 인기척이 느껴진다.
“응? 부장님 이 시간에 왜 회사에 나오셨어요?”
“으음? 자네 아직도 퇴근 안 했나? 나야 외근 나갔다가 처리 할 일이 남아있어서 서류도 챙길 겸 잠시 들렀네.”
절대 이 시간에 회사에서 못 볼 인물 1위인 김우영 부장이 자리에 앉아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로 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외투도 벗지 않고 자리에 앉은 걸 보니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것 같다.
‘그나저나 혼자선 보고서 하나도 제대로 못 올리는 사람이 무슨 일을 처리하겠다고…….’
김우영 부장은 평소 자신의 보고서도 부하 직원에게 시킨다. 설마 자신에게 시키지 않겠지란 불길한 상상을 하며 티 나지 않게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다.
“그럼 부장님 전 이만 퇴근하려고 하는데……부장님은 어쩌실 건가요?”
“음! 걱정 말고 퇴근하게나. 나도 곧 퇴근 할 터니.”
김우영 부장은 정말로 아직 회사에 남아 있을 작정인지, 의자까지 당기며 업무를 보겠다는 걸 몸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너무 의자를 당기기라도 한 것인지 책상 아래에선 쿵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크웁?!”
“괜찮으세요?”
“어? 아아……괜찮네. 살짝 다리를 부딪힌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하게나.”
안정수는 고통어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란 생각을 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며 퇴근을 했다.
‘그래도 남자라고 안 아픈 척 하네.’
고통어린 목소리가 평소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던 것 같지만 워낙 순간이었고, 저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닌 척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같은 남자로써 못 본 척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우영은 책상에 앉은 채 온 몸을 덜덜 떨면서 한 손으로는 부딪힌 부위라도 주무르고 있는지 책상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그의 시선은 안정수가 나갈 때까지 고정되어 있었다. 안정수를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안정수는 모른 척 해달라는 남자의 자존심 어린 눈빛으로 착각하고 퇴근을 했다.
“으음!”
안정수가 나가기 무섭게 김우영의 입에선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오며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다. 책상 위로 올라와 있던 나머지 손까지 책상 아래로 내려 무언가를 움켜쥐곤 안쪽으로 끌어당기듯이 팔에 힘을 준다.
놀랍게도 의자에 앉아있는 김우영의 하반신은 알몸이었고, 책상 안 깊숙이 들어간 의자와 양껏 벌어진 김우영의 허벅지 사이에는 놀랍게도 가느다란 여성의 두 손이 얹혀져 무언가 고통스러운 듯 그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웁!”
안정수가 들었던 고통어린 목소리는 김우영의 입이 아닌 그가 앉아있는 책상 아래에서 들려왔다.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덜덜 떨던 김우영은 곧이어 안정을 찾고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은 고통이 아닌 쾌락이었다.
김우영의 허벅지를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리던 가느다란 여성의 손도 곧이어 힘이 빠진 것처럼 축 처진다. 어두운 책상 아래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축 처진 여성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깔끔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의 은색 반지는 김우영이 이미 더럽힌 적이 있는 반지었으며 그 짝은 방금 전에 이 사무실을 벗어났다.
하지만 이 축 처진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괜히 주 5일제가 있는 게 아니고, 괜히 업무 효율이라 단어가 있는 게 아니듯 월요병을 금방 떨쳐낸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로 돌아간다. 다만 이들 중 몇몇만이 고민에 휩싸인 듯 업무조차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하아…….”
그 중 한 명은 바로 정나은의 남편 안정수이다.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그는 개인적인 고민 때문에 끙끙 앓고 있다.
고민의 이유는 바로 아내 때문이다.
‘역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부동반의 회식이 있던 밤. 자신은 술에 잔뜩 취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기억이 애매모호하다. 분명 의식은 끊겼고, 다음 날 늦은 오후나 돼서야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난 자신이지만 한 가지 묘한 것이 신경 쓰인다.
잠결에 들은 것인지, 아니면 비몽사몽간에 아내와 사랑을 나눈 것인지 모르겠지만 귓가에 남아 있는 아내의 달콤한 신음소리와 일정한 주기로 느꼈던 어떠한 진동.
자신은 분명 술을 마시면 이상하리만치 아내에게 엉겨 붙긴 해도 설마 대리기사가 있는 자동차 안에서 사랑을 나눴을 거라 생각은 안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그렇다면 아내가 관계 후 자신까지 씻기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자진해서 바람 필 여자는 절대 아니고……그러면 한 가지 밖에 없는데…….’
자신도 취했겠다. 아내는 자중하긴 했어도 남자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막을 도리가 없다. 자존심이 강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해도 여자는 여자다.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다고 안 당하면 세상만사 평화로울 거다.
‘만약 당했다고 해도 그 자존심 강한 아내가 조용히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당하더라도 이를 박박 갈 여자다. 남편이 돼서 그날 뭔 일 있었냐고 묻기도 이상하다. 그 자존심 강한 아내는 자신이 그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허리를 작살낼 여자니깐.
그렇기에 안정수는 이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며 고민에 휩싸여 있는 거다. 혹시 몰라 자동차도 확인해봤지만 깔끔하기 그지없어 자신의 의심이 괜한 걱정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내의 행동거지도 이상하지 않고, 오늘 아침에만 해도 깨가 쏟아질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거 참…….”
긁어 부스럼일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안정수는 자신의 가슴 속에 피어난 의심이라는 싹을 키워야 할지 그대로 둬야할지 고민하며 일단은 가슴 속 깊이 덮어두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제까지 그랬듯 자신의 아내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와 믿음은 이정도 의심으로 흔들릴 정도로 작은 게 아니었다.
안정수처럼 얼굴에 근심이라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며, 하는 행동이라곤 평소와 똑같이 업무라곤 모르는 사람처럼 태평한 사람도 고민 아닌 고민에 휩싸여있다. 바로 영업부 부장인 김우영이다.
‘흠……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데 말이지.’
김우영이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 폰 화면에는 얼마 전에 찍은 정나은의 사진이 비춰지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싸지른 하얗고 질척한 욕망으로 온 몸이 더러워진 채 그렇게 능욕 당했으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카메라를 쏘아보고 있는 강한 눈빛이 참 마음에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 때문에 걱정이다.
‘살다 살다 이렇게 자존심 쎈 년은 첨이네.’
분명 꺾였다고 생각할 정도로 달콤한 신음을 내지르며, 쾌락에 푹 적셔져 실신까지 한 유부녀가 정신을 차리면 그 콧대 높은 자존심도 정신을 차리는지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나에게 한 방 크게 먹이고 나면 신고를 하려 했겠지만 이번에 약점을 크게 잡았지.’
하지만 이 약점도 얼마든지 떨쳐내려면 떨쳐낼 수 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쥐를 물어뜯는 법이다. 게다가 이 쥐는 어찌나 고고한지 물어뜯기 시작했다간 자신이 죽더라도 고양이를 물고 지옥으로 손잡고 들어갈 그런 쥐다.
김우영은 그래서 고민이다. 보면 볼수록 배아래 깔아뭉개 높은 콧대를 짓눌러 타락시키고 싶은데 잘못했다간 자신이 깔아뭉개지게 생겼으니 여기서 슬슬 손을 떼야할지 아니면 철저하게 짓눌러야할지 모르겠다.
‘대부분은 약점 잡고 한, 두 번 깔아뭉개면 알아서 기던데…….’
자신이 질릴 때까지 자포자기를 하는 유형도 있었고, 아예 마음을 바꿔 즐기는 쪽으로 마음먹는 유형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한 탓일까? 산전수전 다 겪은 역전의 용사가 따로 없다.
‘이 이상 철저하게 하려해도 어떻게 해야 하지…….’
내기를 하자고 해도 저번처럼 어수룩하게 걸려들지 않을 것이고, 잠들었다고 해도 남편 곁에서 철저하게 몸을 능욕했는데도 마음이 꺾이질 않는다. 김우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 두들기며 고민에 잠긴다.
‘그나저나 박경원 사원은 별 낌새 없나?’
최 사장이 어련히 잘 했겠지만 정나은 때문에 심란한 마음이 전염이라도 되는지 자연스레 눈이 간다. 업무를 보면서도 그 호탕한 성격은 어디 안 가는지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업무를 보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눈치 채지 못한 듯싶다.
‘이번엔 얼마나 싸질렀을까?’
최 사장의 성적 취향 때문에 간간이 근황 보고하는 게 참 힘들다. 자신의 씨로 임신했을지도 모르는 여성의 근황을 꼭 알려줘야 하니 그걸 자연스레 알아보는 것도 참 고역이다.
‘편하기로 따지면 김수진 같은 여성이 편한데……이 와중에도 정나은이 떠오르는 걸 보면…….’
여성으로써의 매력은 수수하면서도 그 육감적인 몸뚱어리를 가진 김수진이 더 탐하는 맛이 있지만 타락시키고 싶으면서도 계속 생각나는 건 정나은이다. 정말이지 묘한 매력이 있는 여성이다.
“후~고민해봤자 답도 안 나오는군. 일단 일이나 해볼까?”
김우영은 외근 나간다고 사원들에게 말한 뒤 고객을 만나러 회사를 나섰다. 회사를 나섬과 동시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되었으며 자신의 고민의 근원에게 메시지를 날린 뒤 서둘러 일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정나은은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남편 앞에서도 그랬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며 오늘도 고객을 만나며 하나의 계약이라도 더 따기 위해 발 빠르게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 당했을 때와는 다르게 약간 불편해 보이지만 당당한 그녀의 걸음걸이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띠링
영업하는 사람답게 메시지가 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바로 확인한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그 내용을 확인하자 고운 얼굴이 확 찌그러지며 자신의 불쾌한 기분을 있는 대로 드러낸다.
“어쭈? 아주 이젠 오라 가라 신났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김우영 부장이었다. 2시간 정도 후 시내 유명한 카페에서 얼굴 좀 보자는 간결하면서도 명령조의 메시지다. 정나은은 약점이 잡혔다고 해도 이렇게 명령조로 나오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그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곧이어 스마트 폰이 또 다시 울리며 메시지를 전송받는다.
“……까득.”
정나은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이를 갈았다. 뒤이어 전송된 건 그날 저녁에 찍힌 사진 중 하나였다. 그것도 굴욕적으로 사용 후 그 내용물이 든 콘돔을 자신의 얼굴에 집어던진 후 찍은 사진이다. 이때만 해도 실신직전인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자신의 여자로써의 달아오른 얼굴에 몸의 확하고 달아오른다.
‘이런 얼굴이란 말이지?’
새삼 신기하면서도 아랫배가 찌르르 울리는 감각을 억누르며 스케줄 체크를 해본다. 문제없다. 다만 만난다 해도 현재로썬 뾰족한 수가 없는 정나은으로썬 아직 이 만남이 달갑지 않다.
“쯧,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만나야지.”
한껏 치켜 올라간 눈매는 내려올 생각을 않고, 그녀의 입에선 혀를 차는 소리가 새어나오며 그녀의 기분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주눅 든 기색도 없이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시원시원하게 길거리를 걸어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능력 있는 여성의 모습 그 자체였다.
김우영은 재빨리 일을 하나 끝마치고 진즉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며 정나은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오전 회사에서 고민에 휩싸였던 모습은 일체 남아있지 않고, 유부녀와의 밀회를 즐길 생각에 콧노래까지 흘러나온다.
‘응? 왔군.’
카페 입구를 눈 빠져라 바라본 보람이 있다. 사회생활을 해서인지 약속시간을 칼처럼 지키며 들어오는 모습이 눈의 보양을 준다.
능력 있는 여성의 제복 모습이란 건 남성의 로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깨끗하게 빼어 입은 검은 정장 위로도 알 수 있는 부풀어 오른 가슴이나 잘 발달된 골반은 그녀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탄력적인 엉덩이를 자연스레 흔들게 해주니 어느 남성이라도 시선이 안 가겠는가?
안경까지 써 깐깐하면서도 지적으로도 보이는데 일부러 연하게 한 화장 때문인지 청순미까지 살살 흘러나오니 저런 여자를 어찌 깔아뭉개지 않고 배기겠는가?
김우영과는 달리 정나은은 그를 발견하자 미간이 확 좁혀졌지만 짜증내는 모습도 매력적이니 이것 참 곤란할 따름이다.
‘정말로 어떻게든 굴복시키고 싶은데…….’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이 올곧은 걸음걸이로 다가와 반대편에 앉는 정나은의 모습이 고고하기까지 하다. 여성이라면 자신을 억지로 깔아뭉갠 남자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태도로 있을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거다.
“그래서 무슨 용무인데 바쁜 사람 오라가라야?”
정나은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가시가 담긴 말로 김우영을 쏘아붙인다. 김우영은 서두르지 말라며 웃음으로 무마한다. 김우영은 느긋하게 그리고 끈적한 눈길로 그녀를 뜯어본다. 자신의 눈길을 알아 챈 것인지 한층 기분 나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다.
‘승부수를 던져볼까?’
역시 눈앞에 유부녀를 앉혀놓으니 이성보단 본능이 더욱 강하다. 오전까지만 해도 손을 떼야하나 고민하던 게 거짓말처럼 싹 사라지고 어떻게든 자기 입맛대로 굴려보고 싶은 충동이 강해졌다.
“역시 그 맛을 못 잊겠단 말이야? 그런 의미로 어때? 슬슬 너도 내 맛을 몸이 기억할 때가 됐는데.”
“미안하지만 조금도 기억 안 나서 말이지.”
“그야 그러시겠지. 결국 이번엔 실신해버렸으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정나은은 김우영의 조롱에 울컥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확 열이 올랐다가도 금방 머리를 식히며 차분히 자리를 지킨다.
‘이것 참 갈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는 건 기분 탓인가?’
자신의 도발에도 금세 차분함을 되찾는 모습에 김우영은 입맛을 다신다. 이렇게 되면 정말로 정면승부정도 밖에 길이 남지 않았다.
‘아니면 여럿이서 바보가 될 때까지 굴리는 것뿐인데…….’
그러자니 자신의 화려한 여성편력에 금이 가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 맛있는 걸 나눠먹는 것도 싫다. 치열하게 싸우는 이성과 본능의 싸움에서 결국 본능이 이겨버렸다. 이런 여자를 또 어디서 만나겠는가? 이쯤 되니 서로 자존심 문제다.
“허허~좋아.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자고,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까지 버틸 줄은 몰랐어.”
“……흥.”
정나은은 새침한 고양이처럼 코웃음 칠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가 파르르 떠는 걸 보니 기분 나쁜 것 같진 않다. 김우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고른 뒤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래서 말이지. 난 네년을 이리저리 내 입맛대로 굴리고 싶거든? 그런데 참 그게 힘들어. 그래서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어?”
“내 몸을 마음대로 굴리게 하겠다는 남자의 제안을 들을 것 같아?”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지난번처럼 내기를 하자고. 어때?”
“지난번엔 취했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달라.”
내기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 보고 있자니 어려워질 법도 싶지만 그럼에도 이 여자는 반드시 자신이 제안하는 내기에 응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호시탐탐 어떻게 고양이를 물어뜯을지 고민하는 쥐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깐.
“넌 나에게 받아내야 할 것도 있고, 서로 이기는 내기를 하자 이거야. 한 달. 딱 한 달만 내가 하라는 대로 엉덩이를 흔들어. 한 달 안에 네년을 굴복시켜주지. 만약 한 달이 지나도 그 자존심을 세울 수 있다면 지금까지 찍은 사진 전부 지우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거래처를 넘겨주지. 그 뒤에 서로 우리는 만나지도 않는 사이로 돌아가자고.”
한 달 동안 자기 입맛대로 굴려도 굴복하지 않는 년이라면 자진해서 떨어져나가는 게 좋다. 정나은은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르겠다. 그저 무표정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생각에 잠기는 그녀다.
‘하지만 덥석 물지 않고 어떻게 하려고?’
자신에게 찍힌 사진은 받아야 한다. 물론 안 받아도 그만이지만 자신에게 한 방 못 먹이고 이 관계가 끝나는 게 더 열 받을 그녀다. 그렇기에 거래처라는 미끼는 자신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건수이며, 어떤 의미론 그녀에게 주는 입막음 비용인 셈이다.
“그 내기는 내가 너무 손해인데? 날 한 달 동안 가지고 놀 거면서 겨우 거래처 하나? 장난해?”
“그렇게 쎄게 나와도 되나 몰라? 이래봬도 많이 숙이고 들어가 줬건만…….”
김우영은 보란 듯이 스마트 폰을 들고 흔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나은의 얼굴에는 동요나 짜증이 묻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진한 미소가 입가에서 묻어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래처 전부와 남편의 승진.”
“뭐?”
“귀가 막힌 거야? 거래처 전부와 남편의 승진. 그러면 한 달 동안 충실하게 엉덩이를 흔들어주지. 물론 이 관계가 끝난 뒤에 신고도 안하겠어.”
김우영은 그녀의 당당한 요구에 허탈한 웃음이 올라온다. 궁지에 몰리고 약점까지 잡힌 이 와중에도 그녀는 자신을 돈에 팔지 않겠다는 뜻이다. 거래처라는 건 영업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힘겹게 개척하며 걸어온 길이자 신뢰의 증표다. 그걸 남에게 건네주고 이쪽과 거래하라고 설득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걸 전부란다.
그녀는 몸과 자존심을 걸었고, 자신은 지금까지 쌓아올린 사회생활과 신뢰를 내놓으란 소리다. 차라리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풋! 크크크큭! 이거 진짜 걸작이군.”
김우영은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도저히 막지 못하겠다. 남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말이지 끝까지 자기 머리 위에서 춤추겠다는 이 당돌한 여자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지.’
한 방 먹이기 위해 살짝 틈을 보여줬더니 아주 머리 꼭대기에 올라선 채 그 탄력적인 엉덩이를 흔들며 자신을 놀리고 있으니 안 받아줄 수 없지 않은가.
“좋아. 그 내기 받지.”
“훗! 한 달 동안 그 비루한 몸으로 용 써보라고.”
“상세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김우영과 정나은은 평화롭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 고풍스런 카페 분위기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살벌하기 그지없는 눈빛을 서로에게 쏘아대며 서로를 물어뜯을 이야기를 나눈다.
둘 다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답게 내기에 대한 상세한 것을 조목조목 따진다.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세 치 혀에는 독을 잔뜩 바른 검을 날카롭게 세운 채 서로의 인생을 건 내기를 시작했다.
하늘은 짙은 밤의 장막이 드리운 지 오래다. 안정수는 오늘 하루 아내에 대한 고민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멍하니 있을 때도 많아 하루에 처리해야 할 업무가 밀리고 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진해서 야근중이다.
‘배고픈데 커피라도 마실까?’
나가서 뭔가를 사먹고 오자니 차라리 후딱 업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속 편할 것 같은 안정수는 텅텅 빈 사무실을 뒤로하고 탕비실로 걸음을 옮긴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타고 있자니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자괴감도 든다.
‘그냥 내일 처리할 걸 잘못했나?’
그윽하게 올라오는 향기로운 커피 향을 느끼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낸다. 신경과민인지 오랜만에 찾아온 두통 때문에 더욱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다. 커피에 설탕을 더욱 투하해 달달하게 마시며 지친 몸에 당분을 주입해도 한 번 가라앉은 기분은 영 올라올 기미가 안 보인다.
“에잉~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퇴근 할걸.”
컴컴한 사무실에서 혼자 궁상맞게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김우영이 영업부 부장으로 와서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자진해서 자리를 지키지 않으니 급한 일이 아니면 다들 칼 퇴근해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이다. 안정수는 손에 든 커피를 천천히 마시고도 기분이 가라앉아있으면 그냥 퇴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가서 예쁜 마누라나 끌어안고 자야겠다.’
자신의 고민도 아내 얼굴을 보면 씻은 듯이 날아갈 게 분명하다. 안정수는 커피를 후륵 마시고 탕비실에서 퇴근하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울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사무실엔 인기척이 느껴진다.
“응? 부장님 이 시간에 왜 회사에 나오셨어요?”
“으음? 자네 아직도 퇴근 안 했나? 나야 외근 나갔다가 처리 할 일이 남아있어서 서류도 챙길 겸 잠시 들렀네.”
절대 이 시간에 회사에서 못 볼 인물 1위인 김우영 부장이 자리에 앉아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정말로 온 지 얼마 안 됐는지 외투도 벗지 않고 자리에 앉은 걸 보니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들어온 것 같다.
‘그나저나 혼자선 보고서 하나도 제대로 못 올리는 사람이 무슨 일을 처리하겠다고…….’
김우영 부장은 평소 자신의 보고서도 부하 직원에게 시킨다. 설마 자신에게 시키지 않겠지란 불길한 상상을 하며 티 나지 않게 서둘러 퇴근 준비를 한다.
“그럼 부장님 전 이만 퇴근하려고 하는데……부장님은 어쩌실 건가요?”
“음! 걱정 말고 퇴근하게나. 나도 곧 퇴근 할 터니.”
김우영 부장은 정말로 아직 회사에 남아 있을 작정인지, 의자까지 당기며 업무를 보겠다는 걸 몸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너무 의자를 당기기라도 한 것인지 책상 아래에선 쿵하는 작은 소리가 들린다.
“크웁?!”
“괜찮으세요?”
“어? 아아……괜찮네. 살짝 다리를 부딪힌 것뿐이야. 신경 쓰지 말고 퇴근하게나.”
안정수는 고통어린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란 생각을 하며 사무실을 빠져나가며 퇴근을 했다.
‘그래도 남자라고 안 아픈 척 하네.’
고통어린 목소리가 평소 목소리와는 전혀 달랐던 것 같지만 워낙 순간이었고, 저렇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아닌 척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같은 남자로써 못 본 척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김우영은 책상에 앉은 채 온 몸을 덜덜 떨면서 한 손으로는 부딪힌 부위라도 주무르고 있는지 책상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그의 시선은 안정수가 나갈 때까지 고정되어 있었다. 안정수를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안정수는 모른 척 해달라는 남자의 자존심 어린 눈빛으로 착각하고 퇴근을 했다.
“으음!”
안정수가 나가기 무섭게 김우영의 입에선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오며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다. 책상 위로 올라와 있던 나머지 손까지 책상 아래로 내려 무언가를 움켜쥐곤 안쪽으로 끌어당기듯이 팔에 힘을 준다.
놀랍게도 의자에 앉아있는 김우영의 하반신은 알몸이었고, 책상 안 깊숙이 들어간 의자와 양껏 벌어진 김우영의 허벅지 사이에는 놀랍게도 가느다란 여성의 두 손이 얹혀져 무언가 고통스러운 듯 그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웁!”
안정수가 들었던 고통어린 목소리는 김우영의 입이 아닌 그가 앉아있는 책상 아래에서 들려왔다. 책상 위로 고개를 떨군 채 덜덜 떨던 김우영은 곧이어 안정을 찾고 고개를 든다.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은 고통이 아닌 쾌락이었다.
김우영의 허벅지를 움켜쥔 채 부들부들 떨리던 가느다란 여성의 손도 곧이어 힘이 빠진 것처럼 축 처진다. 어두운 책상 아래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축 처진 여성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깔끔하면서도 심플한 디자인의 은색 반지는 김우영이 이미 더럽힌 적이 있는 반지었으며 그 짝은 방금 전에 이 사무실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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