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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 8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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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사랑 노래

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 다니는

몇 송이의 눈.



============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년부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집에는 연락이 안되고

셀폰에서 단축키 1번을 찾아 눌렀다는 것이다.

대뜸 나와의 관계를 묻는다.

내 걸프렌드라고 말해 주었다.

(아... 여기선 법적으로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

결혼하지 않고 사는 실제 부부를 그렇게 부른다.

서류상 부부가 아닐뿐이지

실제 사실만 증명되면 법적으로 동등한

부부의 의무와 책임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말해줘야 경찰에서도 책임소재를 면할 수 있다.

써니부룩 응급실에 있는데 빨리 와 달라는 것이다.

혹시 자녀들이 있으면 데리고 오라는 것이다.

아뿔사!



어떻게 차를 몰아 갔는지 모른다.

응급실로 뛰어 들어 갔을때는

이미 그녀는 수술실에 들어가고 없었다.

(사고로 인한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

보호자 동의 없이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댄다.

경찰이 증인이 되어주었고

나중에 그 사실을 가족에게 통지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게 인명우선의 원칙이라고 한다.)

경찰은 응급실에 들어서는 나를 금방 알아보고

이렇게 설명을 해 준다.

그리고 내 팔을 잡아 끌고 수술실쪽으로 데리고 간다.

동양인이라서 금방 알아채린 모양이었다.

대형 트럭에 차 한귀퉁이를 받치고

균형을 잃어서 차도를 벗어나 전복됬다는 것이다.

에어백이 있는대로 다 터져서 신체 손상은 미미한 편이나

차가 전복되는 바람에 머리가 크게 다쳤다는 설명이었다.

경찰은 차가 고급차라서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식이었다.

서류를 보여 주면서 한 귀퉁이에 X 표시 한 곳을 가리킨다.

상황 설명을 다 들었고

긴급한 상황이라서 부득불 보호자 동의 없이 먼저 수술에 들어갔고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 들이었다.

수술실 문을 열자

보조 간호사들이 내게 가운을 입혀주고

머리에 모자를 뒤집어 쓰게 하고 마스크를 주고

손을 씻게 하고 이래저리 긴급으로 챙겨준다.

그리고 집도를 하고 있는 의사 옆으로 안내한다.

두사람의 의사가 눈에 소형 망원경 같은 걸 들이대고

피 투성인채 무어라 무어라 전문 용어를 써가면서 씨부렁거리고 있었다.

막 두뇌 뼈를 잘라 드러내는 모양이었다.

의사는 내게 무언가 부지런히 설명을 해 주려 했지만

난 제대로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나는 단지 커버 밖으로 드러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손에는 거의 느낌이 없었다.

체온도 느껴지질 않았다.

살아 있는 손이라고 느껴지질 않았다.

맥박이 없다고 내가 이야기 하자

의사는 다시 설명을 해준다.

뇌 수술을 해야 하므로 심장 박동을 잠시 낮추었다는 것이다

정상혈압을 유지하면 뇌를 수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피범먹, 살 범벅...

그것 뿐이었다.

그게 사람의 형체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들은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소형 전기톱이 윙윙거리며 돌아갔고

종종 피가 튀겨서 사방으로 퍼지기도 했고

저렇게 사람의 머리속을 헤집어놔도 되는건지..

그래도 의사는 투명한 낙시줄 같은 것을 연신 들어 올리면서

가위와 집게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의사의 손놀림이 조금씩 속도가 줄어드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마침 반대편 의사가 이야기를 해 준다.

이제 거의 끝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아주 어려운데 참아주어서 고맙다

뭐 이런 말들이었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뭐 경황이 없었다.

대부분 보호자들은 수술실에 들어오자 마자 구토부터 한다고 했다.

그렇게 수술을 하면서도 내게 설명을 해 준다.

지금 수술을 하고 있는 메인 닥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인데

원래 암 환자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수술 준비중 그 암환자가 수술 준비하던 중

갑자기 마취 쇼크로 사망하는 바람에 그냥 수술실을 옮겨 들어 왔다는 것이다.

보통 의사는 사전에 환자에 대한 프로필을 다 갖고 미리 준비하고 수술하는데

교통사고로 인한 응급환자의 경우

환자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까 그냥 바로 수술에 들어가서

그때 그때 직접 그 상황에서 판단하고 수술하게 되는데

이분야 최고 실력자라는 것이다.

내 부인을 위해서 먼저 예약되어 있던 암환자가 잘 죽어 준 것이라고

아예 농담까지 하면서 너털웃음까지 터트렸다.

내가 보기엔 그냥 손으로 헤집는것 같은데

사실 이 의사는 손상된 뇌옆을 걷어내고 핏줄을 묶어주고

그래서 뇌 손상을 최소한으로 하느데 도사라는 것이다.

그래도 한쪽 두뇌가 많이 손상되서

언어나 사고능력이 정상으로 회복되기 어려울거라고 말했다.

처음 48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그리고 고비를 넘기면 3주 정도 지나서

그때 환자의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조금씩 나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심장박동 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바로...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체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메인닥터가 마침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주변에 다른 의사들이 몰려들어 마무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메인 닥터는 내 등을 툭 쳤다.

따라 나오라는 신호였다.

의사는 간단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간호사가 그녀의 옷가지와 핸드백 등을 챙겨 주었다.

인텐시브로 옮겨질 것이므로 그리로 가서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 여기 병원입니다.

- 어? 누구시죠. 제 엄마 전화가 맞는데...

그녀의 셀폰에서 아들의 전화번호를 찾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안았다.

누군가에 연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인텐시브 케어 유닛에 들어자

거기에 중환자들을 돌보는 환자의 가족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고

문득 그제서야 오타와에 있는 아들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 아.. 나는 여기 토론토 엄마 친군데...전에 먼발치에서 한번 봤지.

- 혹시 세일즈 하신다고 하시는 분....

- 맞어... 엄마가 이야기 한 모양이네..

- 네.. 몇번 말씀하셨어요... 좋은 친구 하나 사귀게 됬다고..

- 그래?

- 네... 어머니는 별로 말수가 없는 분인데.. 친구 생겼다고 아주 좋아하시던데..

- 허허.. 그래

- 네... 그런데 무슨 일이지죠? 병원이라고....하셔서..

- 아... 지금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왔어.

- 네? 엄마가요? 상태는 어떤가요?

- 머리를 좀 다쳐서 수술을 했어.

- 이제 막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옮겨지는것 같애.

- 네!

전화속 목소리는 무척이나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어쩔줄 몰라하는 듯 느껴졌다.

- 아무래도 아버지한테 연락도 해야 할것 같은데..

- 아버지요?

- 응 그래... 밴쿠버에 산다고 들은것 같은데...

아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한참 후에

- 아뇨... 아실지 모르겠지만... 밴쿠버에는 따로 연락할 필요 없어요.

- 그래?

(사실 속으로 어림짓 그렇게 추측은 이미 하고 있었다..)

- 아무튼 제가 서둘러 내려가죠.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병원 이름과 위치를 대충 알려주었다.

- 어차피 깨어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것 같고

그리고 회복시간이 많이 필요하니

서둘러 오지는 말고 조심히 차를 잘 몰아오게나~

아들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일이 좀 생겼어.

- 무슨일?

- 응... 아는 사람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여기 좀 내가 있어야 할것 같아서..

- 어딘데?

- 서니부룩 병원.

- 뭐 필요해?

- 모르겠어...

- 가족들은 뭐해

- 응..그게 말야.. 연락이 잘 안되서...오타와에 있는 아들이 아마 내려올거야..

- 내가 갈까?

- 아니.... 뭐 올필요는 없어..

- 그사람 돌봐줄 가족들은 그럼 거기 없는거야?

- 그렇게 됬나봐...

- 그럼 당신이 거기 있을꺼야?

- 그래야할것 같아...

- 그럼 내가 그리로 갈께...뭐 챙겨갈꺼 없어?

- 둘러보니까... 여기 뭐 하나도 없네...

- 알았어... 대충 내가 챙겨가보지..근데 당신 밥 먹었어?

- 아니... 생각없어... 수술실에서 수술하는걸 지켜봤더니...속이 안좋아..

- 얼마나 걸려? 내가 한 십분 있다가 출발할건데..

- 거기서 한 이십분 정도 걸릴거야..내가 나가 있을께!

간호사에게 내 전화번호를 일러주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제서야 응급실 앞에 그냥 세워둔 차가 생각이 났다.

부랴부랴 갔더니 마침 경찰이 날 보고 손짓을 한다.

내가 차에 키를 꼽아놓고 가서 자기가 저쪽으로 옮겨 두었댄다.

그러면서 수술은 어땠냐고 묻는다.

그래도 죽지 않은 것만해도 감사 할 일이라고 날 위로한다.

뒤집어진 차에서 끄집어 내기 전에는 죽은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은 마치 제 일처럼 날 위로하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듯 했다.

그리고 명함을 주면서

재활하는 사람들 모임이 있는데 한번 연락해 보라고 한다.

서로들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참 한국 경찰도 이정도는 되야 하는데....그런 생각이 들었다.



- 이거좀 먹어봐! 저녁 준비 해 놓은건데...

- 그녀는 젖가락으로집어 내 입에 넣어준다.

- 맛있지?

나는 말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 근데 가족들은 연락됬어?

- 응...

- 근데 아직도 아무도 안왔어?

- 응... 오타와에 있는 아들이 지금 내려 오고 있다고 전화왔어.

- 그리고 다른 식구는?

- 아마 없을거야...

- 그래? 다른 가족이 없나부지?

- 응... 남편이 밴쿠버에 산다고 들었어...

- 남편?

그녀는 눈이 휘둥그레지면 날 빤히 쳐다 본다.

내가 그냥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그냥 음식을 주섬 주섬 집어먹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컵에 물을 따라 준다.

- 왜? 어떤 사이냐고 묻고싶지 않어?

- 아... 아니... 그냥..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 그냥 아는 사람이야.....

내가 덤덤하게 말을 내 뱉자 그녀는 못믿겠다는 얼굴 표정이다.

- 그냥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부다... 그렇게만 생각해.

- 그건 또 왜?

- 말 하기 싫은 모양이지...

- 알았어...

어차피 우린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본인이 부러 이야기 하지 않는 한 그냥 묻지 않기로...

그게 편하다.

우리 나이에...

그런거 자꾸 물어서 뭐이가 좋을게 있다고..

그냥 말하기 싫으면 그냥 그렇게 받아 들여주는 수 밖에..



마침내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난 잔뜩 긴장한채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서 계속 수술실 옆 회복실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을 모이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갑자기 뭔가 둔기로 퍽! 맞은 느낌이었다.

중환자실 보호자들 대기하는 곳이

그렇게 휑하니 터진 광야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밤 열두시를 넘겨서 아들은 도착했다.

먼 발치에서 본 기억이 나기도 했지만

얼굴 모습이 제 엄마를 아주 쏙 빼다 박었다.

열 아홉 꽃 같은 아가씨가 낳은 아들...

그 아들이 저렇게 크긴 컸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드란 말이다.

한국 같으면

지금 저 나이면

아마도 머리 깎고 군대에서 박박 기고 있을 나이일 터인데...

흙덩어리를 집어 먹어도 소화되고

뭐... 쐬쪼각을 집어 먹어도 그냥 내려가는 나이라든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냥 저렇게 무너지듯 주저 앉는 것 말고는.....

아들은 호흡과 맥박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제 엄마를 보고 나오더니 털썩 주저 앉았다.



문득

테이블 한 켠에

장례식장 소개 광고지가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참나....



그날 밤.

아침 해가 떠올라 창에 새어 들어 올때까지

그냥

우리 셋은 중환자실 보호자룸 소파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들은

꼼짝도 않고 그냥 그대로

회복실 문만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꼼짝 않고 보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혜원이가 준비해온 음식을 전자렌지에서

데워 가져왔다.

그제서야 허기를 느꼈었다.

허겁지겁 빈 속을 채웠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떠올랐다.

창밖

토론토는

어제 밤의 침묵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우릴 향해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제 수술을 했던 의사 중 한사람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뇌압이 고비를 넘기고 정상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걸 기다리는라고 혈압과 호흡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만 했다

환자가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 고비를 잘 넘겼다.

이제는 고비를 넘겼으니 회복하기까지 많이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는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차분히 설명을 해 주었다.



아들은 다음날 오타와로 돌아갔다.

며칠만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갔다.

자기 여자 친구가 내려 와서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고 했다.

참 착한 여자친구네....

엄마도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며칠 걸릴지도 모르지만 정말 어려운 부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마고 흔쾌히 응답해 주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아들의 여자친구가 내려왔다.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스코틀랜드인 금발의 검은 눈동자 아가씨였다.

한국말이 어설펐지만

정성을 다해 제 시어머니 될 사람을 돌보았다.

사연을 들어보니

다니던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내려왔다고 했다.

참으로 기특한 아가씨로고....



혜원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병원으로 음식을 해다 날렀다.

더러는 그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가기도 했고

그날은 내가 밤새 병원에 있어야 했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내게 물었다.

혹시 자기 시어머니 될 사람 남자친구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아니 그랬었다고... 과거형으로 대답해 주었다.

사실 혜원이가 물어봐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까지도 했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들 여자친구에게 허그를 해 주었다.

참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아가씨였다.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결혼식때는 꼭 날더러 데리고 들어가 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지금은 혜원이랑 살고 있고

혜원이가 좋다면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 주었다.

근데 아직은

내가 청혼할 입장이 안되니...

조금만 더 지나서...

적당한 때가 되면 청혼하겠노라고.. 그렇게 귀뜸해 주었다.



그녀는

겨우 아들의 얼굴을 알아 보긴 했지만

얼굴에 표정을 짓지를 못했다.

안면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의 대부분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이 늘 어눌했다.

몇마디 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애써 뭔가 말하려 첫마디를 내 던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억력이 염려했던것 보다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늘 무표정한 모습 그대로였다.

안면을 움질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리...

그녀는 겨우 눈빛으로 예... 아니오..를 말할 수 있었다.

눈까풀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십분마다 늘 눈에 안약을 넣어 주어야만 했다.

그나마 안구가 건조해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즐거운 이야기를 해도

그녀는 입술조차 씰룩거릴 수가 없었다.

얼굴에 근육은 있었으나

그 근육을 움직일 신경이 다 죽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사의 말로는

그 신경이 살아나지 않으면

점차 근육도 소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근육이 죽어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한달이 지나서

남편이 찾아 왔다

아들의 여자친구가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피차 얼굴 마주쳐야 좋을게 없다고..

그래서 우린 병원 근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자리잡고 앉아서

겨우 커피 반 쯤 마셨을때

아들이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들어섰다.

남편은 바로 갔다는 것이다.

아들은 제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고 불러보지 않았댄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무슨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겠는가...

디엔에이만 일치 할 뿐이지..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혜원이 말을 꺼냈다.

- 어떻게 할건데요?

- 뭘?

- 그냥 이렇게 계속......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 아니.... 내 말은....

- 그래... 알어... 이제 잘 정리해야지...아들녀석도 형편이 어떨지..

- 근데요... 당신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니까..

- 내가 뭐 얼마나 신경을 썼다고 그래?

- 당신 잘 하고 있어요.. 그치만..

- 뭘?

- 근데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요?

- 내가 뭘?

- 나 당신하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 근데?

- 나는 뭐예요? 그럼?

혜원이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내게 처음으로 그런 높은 목청으로 대하긴 처음이었다.

- 그럼 난 뭐냐고요?



나는 혜원의 말에 아무 말도 해 주질 못했다.



- 알아..

나... 혜원이 사랑해.

사랑하는거 맞아.

가슴 설레고

늘 보고 싶고...

이 나이에 주책이라고 하겠지만

나 당신 사랑해.

근데.. 지금은 ...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줘....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래... 알아.. 당신..

그치만... 지금..

그 여자는 뇌 반쯤 없어진 채로 병원에 있어.

내가 무슨 책임질 일도 없어.. 하지만..

근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혜원은

내 말을 듣고

한참이나 울었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



혜원은

결국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아들과 그 아들의 여자친구는

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나는 신부의 아빠가 되어

신부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은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혜원은 떠났습니다.

유월에..

그래도 영어학원 두 학기 꼬박 수료하고 떠났습니다.

공항에서

나는

그녀에게

청혼 할때 주려고 사 놓았던 반지를 꺼내 주었습니다.

그녀는 받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 알아... 나도 알아..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혜원은

날 꼬옥 껴안더니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 나도 알아요... 여전히 당신 사랑해요..

혜원은

그렇게 떠났습니다.

공항에 바래다 주고



나는 리치몬드로 돌아갔습니다.

그녀는 거실 창가에서 밖을 내어다 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 섰을때

그녀는 빤히 날 쳐다 보고만 있었습니다.

더이상

나를 위해

목욕물도 데워주지 못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속옷도 꺼내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곤

자꾸

건조해지는 눈 때문에

안약을 넣어달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야....약!



나는

그녀를 데리고

영 길에 있는 공동묘지에 데리고 갔습니다.

우리가 아프도록 사랑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밤 늦도록

우린 거기 있었습니다.

부엉이가 우~~ 우~~ 하며 울어댔습니다.

나는

그녀의 메마른 입에 내 입을 맞추었습니다.



[ 대리운전 이야기를 마칩니다.

사실

처음 시도했던 이야기는

그냥 야하고 재미난 이야기만을 늘어 놓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늘 좋은 말씀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며칠 쉬었다가

좀 진지한 이야기로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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