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담 분류
대리운전 - 6부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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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막힌 색의 대비는
늦가을의 서늘한 공기와 강렬한 햇빛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대자연의 작품.
그것을 감히 그릴수는 없고
여기에 스케치만 해 둔다.
나는 숨을 고르려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가
오히려 숨을 죽이고 말았다.]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빛줄기로 갈라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은
우리가 아주 깊고 편안하게 잠을 잤던 곳으로
아주 부드럽게 들어와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은
벗은 그녀의 젖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편하게 팔을 벌리고
다리를 곧게 뻗은채 잠이 들어 있었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잘 다듬어진 그녀의 체모로
마치 빛줄기 속에서
무언가 터져 오르는 듯한 느낌 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아 있는 내 다리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조금씩 매만졌다.
- 일어 났어요?
그녀는 잠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응.... 더 자.... 나가봐야 하거든...
- 일루 와봐요..
그녀는 내 허리를 껴안았다.
- 이렇게 조금만 더 있어요....
그녀는 내 다리를 베고 그리고 내 배에 입을 맞추었다.
- 일찍 일어 났어요?
- 아니... 방금...
- 아침 안먹어요?
- 안먹어도 되... 좀 늦게 일어났네....서둘러야 할것 같아..
- 좀만 더 있으래니까....응?
그녀는 내 허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 아.... 그냥 가지 말지...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 이렇게 여자 남겨두고 나가는 나는 기분이 아주 좋겠다..
- 피.....
나는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날 주시했다.
- 진짜 갈꺼야?
- 가야된다니까...
- 알았어요...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총총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 그냥 가면 어떻게해?
- 뭘?
- 안아주고 가야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 알았어...
그녀는 깡충 뛰어올라 내 목에 매달린다.
나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다리를 벌려 내 위로 올라탄다.
- 아... 이렇게 그냥 있으면 안되?
그녀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다.
- 저녁에 다시 올께....
- 알았어...
그녀는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휙 하니 거실쪽으로 달음질을 친다.
- 잠깐만..... 자기야..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문을 열다 말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 이걸 깜박할 뻔 했네...일루와서 이걸 좀 들고가...
- 뭔데?
- 어제 말했잖어....
- 이사짐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 이게 뭐지?
- 응... 고향 참이슬!
- 뭐라고?
- 반갑지?
- 이게 다 참이슬이야?
- 좋아서 죽네.....
이사짐으로 오는 편에 아예 박스로 하나를 사서 부친 모양이었다.
- 어이구... 혼자 들기 무거운데...
- 그럼 두고가.... 크크크
- 아이고.. 일단 한번 본 이상 그렇게는 안되!
박스를 들쳐매고 문을 나섰다.
- 이것도 들고 가야 하는데....
그녀는 쇼핑백을 흔들어 보였다.
- 그건?
- 이건 디스야 디스.... 영어로 디스....
그녀는 깔깔댔다.
- 오늘 완전히 횡재했네!
- 횡재만 했어?
- 횡재 따블따블이다!
( 사실 내가 이삿짐 회사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한국 담배나 소주 정도는 언제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그리고 사무실에도 사실 아주 넘쳐난게 담배하고 소준데....
그래도 마음이 얼마나 정성인가...
담배 몇보루에 소주 한박스를 구하려면
사실 아는 사람일텐데...
그거 어디다 쓸거냐고 물으면 나 준다고 말하진 않았을테고...
이래저래 둘러 댔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준비성이며 나를 향한 정성이
얼마나 갸륵하고
그래서 나는 늘 그녀를 생각하면 행복해 진다.)
- 야... 이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고 아주 흐뭇해 한다.
그녀는 아주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 담배는 하루에 반갑. 알았지?
그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속삭였다.
길 건너 산책로에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주는 낙으로 사는것 같다.
그 큰 집에 어려울 것 없는 살림에.
돈 많겠다.
인물 저 정도면 안빠지겠다..
키가 조금 작은게 좀 흠이지만...
뭐 저정도 키는 그래도 포근히 안아 줄 만 하다..
키가 문젠가?
솔직히 처음엔.....
그녀의 눈빛에서 무척이나 차겁고 냉정한 느낌마저 들어서
반 오기에 반 장난에
그냥 은근 슬쩍 유혹이나 해 볼까... 하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내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느낌이었다.
오타와 가는 길에서 천섬에서의 시간은
오히려 그녀의 잘 준비된 유혹의 함정에
나는 내가 유혹한다고 상황판단을 반대로 착각하면서
내가 그녀에게 걸려든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런 유혹에는 걸려봄 직도 하다.
눈을 씻고 찾아 다녀도 어디 이런 유혹깜이 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행운도 왕 행운이 아닐수 없는데...
자꾸만
그녀와의 관계가 너무도 오래 가는것 같아서....
그녀와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이여자랑은 헤어져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너무도 섬세하고 정갈하게 날 맞을 준비를 했다.
언제나..
갑자기 불쑥 찾아가도
어느새 내가 올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분위기도 잘 만들어 놓았고
그녀의 몸 또한 잘 씼고 예쁘게 가꾸고 있었다.
언제고 손을 뻗으면
내게 와 주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성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그래서 난 그냥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열정과 애정을(?) 갖고 대하게 되어갔다.
그녀는
처음에
마치 먼 발치에 있는 들 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그녀는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화초같은 느낌이 되었다.
그녀는
참으로 소중한 한 속이 꽃 같은...
하루 하루... 정이 들어가는것 같고...
사실 마음을 점점 빼앗기면서..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괴로운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법적으로야 나는 아무 하자가 없는 싱글상태지만
그녀는 딸린 식구가 있는...
어쩌면
그녀는 잠시..... 그녀의 시간표 안에
나를 채워 넣고..
그리고 정성들여 맛있게 요리(?) 해 먹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들...
그렇게 맛있게 먹혀도 행복하고 즐거운걸...
아... 어쩌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냥 부담없이.... 즐기기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그녀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그녀를 만날때면
김춘수님의 꽃 이라는 시가 생각 날 정도....
그렇게 정이 들어 버린것은 아닐까...
조수석에 던져 넣은 쇼핑백 안이 궁금해 졌다.
신호 받느라 잠시 기다리는 틈에 쇼핑백을 끌어 당겨
그 속을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로 디스 담배가 몇 보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포장 꾸러미도 한개 들어 있었다.
그게 뭘까... 궁금해서 견딜수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려는데
마침 사무실 미스최가 나오려다 나랑 마딱뜨렸다.
- 어머! 어서 오세요... 사장님 조금 늦으신다고 전화 왔어요.
- 그래... 좀 기다리지...
- 커피 드려요?
- 응....
- 다방커피로요?
- 응.... 오늘은 서울역전다방 커피로 좀 맛있게! 알았지?
- 알았어요. 서울여~억 다방!
미스최는 그 큰 궁둥이를 삐죽 삐죽 흔들며
사무실 안쪽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포장을 서둘러 끌러 보았다.
완전 고전적인 지포 라이터가 반짝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남포기름에 라이타돌을 교환해 주어야 하는....
말 그대로 애장하는 골동품 그 자체!
그녀의 마음 씀씀이와 준비성이 또 한번 느껴진다.
자그마한 쪽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릴적 아빠가 동네 가게에서 심부름 시키면서
담배 한갑하고 가끔은 라이타돌을 사오라고 했어요.
나는 그 조그마한 라이타 돌을 오다가 흘려서
길거리에서 몇번이고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 라이타 돌이 부싯돌이라는 걸 안건
한참 지나서였죠.
아빠 라이타는 한번 불을 붙이면
아무리 쎄게 흔들어도 꺼지지 않았어요.
아빠는 내 앞에서 그걸 보여주시곤 했죠.
자기한테 그걸 하나 꼭 사주고 싶어서 몇군데 보고 다녔는데....
마침 그걸 발견했어요.
구식 스타일이지만 아주 세련됬어요.
이쁜 악마......
그녀의 필체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닮은것 같았다.
아주 작은 글씨로 정성을 다해 꼬박고박 적은....
- 오늘 통관해야 할 이사짐 서류예요.
미스최는 커피잔을 내려 놓으면서
책상에 놓인 두툼한 서류를 가리킨다.
지난주에 통관은 별 문제 없었지?
- 별 문제 없기는요...새로온 신삥한테 걸리는 바람에
사장님이 아주 혼쭐이 났대요.
김이사님이 갔으면 수월했을텐데...
- 나라고 뭐 별 뾰족한 수가 있나?
- 그래도 그쪽 애들 다 꿰차고 있잖아요...친구도 거기 있고..
- 야야.. 누가 들을라.. 그런 소리 마라...미스최!
사무실 문이 삐걱 열리면서 육중한 체구의 박사장이 들어온다.
- 야! 김이사... 지난주에 아주 죽는줄 알었다.
- 뭘 그런걸 갖고 그래? 원래 세관애들 초짜들이 가오잡는거 몰라?
- 그래도 그렇지 지난주에 너 없는줄 알고 부러 그러는것 같드라.
니 친구 뭐야... 그놈 릭이란 놈도 날 보고 아는 척도 안하드라..
- 그러게..내가 뭐래? 릭이랑 골프장 한번 좋은데 데리고 가라니깐....
- 내가 시간이 나냐? 시간이?
- 그래 미스최 젖통 쳐다 볼 시간은 많고 사업상 골프 칠 시간은 없다?
미친눔.. 회사를 말던지....
박사장은 주방쪽을 힐끗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춘다.
- 이눔아. 무슨 말이여? 지랄떨지 말어...
박사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내 입을 막는다.
- 요새 짐이 좀 많이 들어 오는 모양이다?
- 그래! 요새 이민들 무자게 오네~
- 오늘 나갈 짐이 몇군데지?
- 한군데.. 둘... 세군데...셋이네!
박사장은 손가락 셋을 펴 보인다.
- 짐은 많어?
- 하나는 아주 백이십개짜리고 나머지 둘은 고만고만해.
- 그럼 오늘 통관 일찍 끝나면 몸좀 풀어 볼까?
- 어! 그래? 왠일이냐? 돈이 좀 궁하냐?
- 이눔아 내가 돈보고 이사짐 날라주냐?
- 그래! 그럼 오늘 공짜로 써비스해 줄래?
- 그렇게는 못허지...
서류를 살펴보던 박사장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다.
- 뭔데?
- 야! 이거봐라. 니집으로 오늘 짐 들어 간다?
- 뭐야? 우리집에 짐이 들어와?
박사장이 내민 서류에는 분명히 내 아파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집 전화 번호도..
- 뭐야?
- 이짜식이 내숭은~~ 새꺄!
박사장은 내 머리통을 냅다 갈긴다.
- 뭐야?
다시 서류를 확인해 보았다.
- 이짜식! 이눔이 아주 숭헌 놈이네!
어째 오늘 이삿짐 도와준다고 말하는 꼬락서리라니~~
짜식아! 한국서 들여 오면 들여 온다고 말해야 할거 아냐!
박사장은 다시 내 뒤통수를 갈긴다.
- 자식아 머리 터지겠다!
( 그럴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 된거 아냐?
아니... 내 집에 무슨 이삿짐이 들어오냐?)
- 이눔이! 다시 합치냐?
서류에 적힌 이름이 눈에 그제서야 확 들어 왔다.
- 우리 계수씨 이름이 혜원이..... 아닌데!
박사장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째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새끼 손까락을 치켜 세워 올린다.
- 이런 숭악한눔! 그새 작업을 했네!
박사장은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 이눔아. 언제 작업했냐? 아조 이놈이.....완전 숭악한놈이네?
그나저나 이 이삿짐은 내가 직접 갈란다. 알! 건! 냐! 이 도적놈아!
뭐야... 무슨 일이야... 도대채...
미스최가 다가왔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 야! 미스최! 여기 집에다 전화해서 확인해봐.
- 알았어요.
미스최는 서류에 적힌 전화번호(내 집전화)에 전화를 건다.
미스최가 내 집 전화를 알턱이 없다.
거의 셀폰으로만 통화하니 말이다...
- 네? 거기 이혜원씨 댁이죠?
- 오늘 이사짐 들어가는거 맞죠?
- 아파트 엘리베이터 예약해 놓으셨죠?
-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확인해 주세요.
- 예. 감사합니다.
박사장이 뒷짐을 지고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 얼굴을 실실 살펴 본다.
- 야! 김이사, 오늘 회나 한사라 안 뜰래?
- 미친넘! 회 한사라갖고 되겠냐?
-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부드럽지!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다.
몇번 일부러 기다린 다음에 전화를 받았다.
- 저예요.
- 응.
- 오늘 바뻐요?
- 응.... 원래 월.화 이틀간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잖어..
- 아침에 일찍 나갔어요?
- 응. 일찍 출근했어.
( 속이 움찔 했다.
사실 리치몬드에서 나왔는데.... )
- 집에 일곱시에 왔는데.... 일찍 나갔네...
- 응... 미리 준비할게 좀 많아서..
- 근데....
- 뭐?
- 나... 당신한테 허락도 없이 일 저질렀다!
- 무슨 일?
- 작은애 어학코스도 끝나서 돌려 보낸거 알잖어.
- 그렇지.
- 근데 비싼 홈스테이비용 내고 있자니 아깝고...
렌트구하기도 그렇고....
- 그렇긴 하지...
- 그래서 홈스테이 오늘 종칠려고!
- 그럼 어떻게 할건데?
- 뭘 어떻게해? 내가 갈때가 어디 따로 있나?
- 갈때 없으면 언제고 들어 오라고 내가 키 줬잖어!
- 그래! 맞어! 그게 정답이야! 오늘 들어 간다!
- 뭐라고?
- 오늘 들어간다고!
- 미쳤어?
나는 속으로 신나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겉으론 태연한 척 했다.
- 놀러 오는게 아니고 살러 온다고?
- 그래? 안되?
- 안되!
- 왜 안되?
- 안된다면 안되!
- 왜 안되냐고?
그녀는 갑자기 울쌍이 되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 하숙비 안내고 들어 올라고 그러지?
그녀는 한참 있다가...
정말로 한참동안 말 없이 있다가.....
......
드디어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몇번이고 불러도 전화통에 대고 깔깔거리고 웃기만 했다.
- 하하하.. 아이고 배야! 그거 조크지?
- 그래~ 조크야...
[ 내일 아침 일찍 토론토엘 가려 합니다.
콘센트 막사긴 하지만 생각보다 사무실에 정리할게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늦게야 마무리가 됬습니다.
눈길이라서 내일 훤할때 갈까 합니다.
아..... 마침 인편이 있어서 잘 썰어진 떡살을 샀습니다.
저녁을 아주 맛있는 떡국으로 해 먹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늦가을의 서늘한 공기와 강렬한 햇빛이 아니면
빚어낼 수 없는 대자연의 작품.
그것을 감히 그릴수는 없고
여기에 스케치만 해 둔다.
나는 숨을 고르려고 하늘을 쳐다 보았다가
오히려 숨을 죽이고 말았다.]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빛줄기로 갈라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은
우리가 아주 깊고 편안하게 잠을 잤던 곳으로
아주 부드럽게 들어와 비추고 있었다.
그 빛은
벗은 그녀의 젖가슴에 와 닿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편하게 팔을 벌리고
다리를 곧게 뻗은채 잠이 들어 있었다.
잘록한 허리를 지나
잘 다듬어진 그녀의 체모로
마치 빛줄기 속에서
무언가 터져 오르는 듯한 느낌 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아 있는 내 다리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조금씩 매만졌다.
- 일어 났어요?
그녀는 잠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응.... 더 자.... 나가봐야 하거든...
- 일루 와봐요..
그녀는 내 허리를 껴안았다.
- 이렇게 조금만 더 있어요....
그녀는 내 다리를 베고 그리고 내 배에 입을 맞추었다.
- 일찍 일어 났어요?
- 아니... 방금...
- 아침 안먹어요?
- 안먹어도 되... 좀 늦게 일어났네....서둘러야 할것 같아..
- 좀만 더 있으래니까....응?
그녀는 내 허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 아.... 그냥 가지 말지...
그녀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 이렇게 여자 남겨두고 나가는 나는 기분이 아주 좋겠다..
- 피.....
나는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날 주시했다.
- 진짜 갈꺼야?
- 가야된다니까...
- 알았어요...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총총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 그냥 가면 어떻게해?
- 뭘?
- 안아주고 가야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 알았어...
그녀는 깡충 뛰어올라 내 목에 매달린다.
나는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다리를 벌려 내 위로 올라탄다.
- 아... 이렇게 그냥 있으면 안되?
그녀는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다.
- 저녁에 다시 올께....
- 알았어...
그녀는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휙 하니 거실쪽으로 달음질을 친다.
- 잠깐만..... 자기야..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문을 열다 말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 이걸 깜박할 뻔 했네...일루와서 이걸 좀 들고가...
- 뭔데?
- 어제 말했잖어....
- 이사짐 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 이게 뭐지?
- 응... 고향 참이슬!
- 뭐라고?
- 반갑지?
- 이게 다 참이슬이야?
- 좋아서 죽네.....
이사짐으로 오는 편에 아예 박스로 하나를 사서 부친 모양이었다.
- 어이구... 혼자 들기 무거운데...
- 그럼 두고가.... 크크크
- 아이고.. 일단 한번 본 이상 그렇게는 안되!
박스를 들쳐매고 문을 나섰다.
- 이것도 들고 가야 하는데....
그녀는 쇼핑백을 흔들어 보였다.
- 그건?
- 이건 디스야 디스.... 영어로 디스....
그녀는 깔깔댔다.
- 오늘 완전히 횡재했네!
- 횡재만 했어?
- 횡재 따블따블이다!
( 사실 내가 이삿짐 회사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한국 담배나 소주 정도는 언제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그리고 사무실에도 사실 아주 넘쳐난게 담배하고 소준데....
그래도 마음이 얼마나 정성인가...
담배 몇보루에 소주 한박스를 구하려면
사실 아는 사람일텐데...
그거 어디다 쓸거냐고 물으면 나 준다고 말하진 않았을테고...
이래저래 둘러 댔겠지만...
그래도 그녀의 준비성이며 나를 향한 정성이
얼마나 갸륵하고
그래서 나는 늘 그녀를 생각하면 행복해 진다.)
- 야... 이거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표정을 보고 아주 흐뭇해 한다.
그녀는 아주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환하게 웃었다.
- 담배는 하루에 반갑. 알았지?
그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속삭였다.
길 건너 산책로에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주는 낙으로 사는것 같다.
그 큰 집에 어려울 것 없는 살림에.
돈 많겠다.
인물 저 정도면 안빠지겠다..
키가 조금 작은게 좀 흠이지만...
뭐 저정도 키는 그래도 포근히 안아 줄 만 하다..
키가 문젠가?
솔직히 처음엔.....
그녀의 눈빛에서 무척이나 차겁고 냉정한 느낌마저 들어서
반 오기에 반 장난에
그냥 은근 슬쩍 유혹이나 해 볼까... 하고 시작했지만
오히려 내가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느낌이었다.
오타와 가는 길에서 천섬에서의 시간은
오히려 그녀의 잘 준비된 유혹의 함정에
나는 내가 유혹한다고 상황판단을 반대로 착각하면서
내가 그녀에게 걸려든것 같았다.
어쨌거나..
이런 유혹에는 걸려봄 직도 하다.
눈을 씻고 찾아 다녀도 어디 이런 유혹깜이 있는가 말이다...
그런 면에서 행운도 왕 행운이 아닐수 없는데...
자꾸만
그녀와의 관계가 너무도 오래 가는것 같아서....
그녀와 깊어지면 깊어 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이여자랑은 헤어져야 하는데...
그런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만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드는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너무도 섬세하고 정갈하게 날 맞을 준비를 했다.
언제나..
갑자기 불쑥 찾아가도
어느새 내가 올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분위기도 잘 만들어 놓았고
그녀의 몸 또한 잘 씼고 예쁘게 가꾸고 있었다.
언제고 손을 뻗으면
내게 와 주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정성으로 나를 사랑해주고..
그래서 난 그냥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나름대로 열정과 애정을(?) 갖고 대하게 되어갔다.
그녀는
처음에
마치 먼 발치에 있는 들 꽃 같은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그녀는 화단에 잘 가꾸어진 화초같은 느낌이 되었다.
그녀는
참으로 소중한 한 속이 꽃 같은...
하루 하루... 정이 들어가는것 같고...
사실 마음을 점점 빼앗기면서..
그래서 다른 한편으로는 괴로운 마음을
어디에 하소연 할 데가 없었다.
법적으로야 나는 아무 하자가 없는 싱글상태지만
그녀는 딸린 식구가 있는...
어쩌면
그녀는 잠시..... 그녀의 시간표 안에
나를 채워 넣고..
그리고 정성들여 맛있게 요리(?) 해 먹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들...
그렇게 맛있게 먹혀도 행복하고 즐거운걸...
아... 어쩌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그냥 부담없이.... 즐기기만 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그녀였는데..
이제는
이렇게 그녀를 만날때면
김춘수님의 꽃 이라는 시가 생각 날 정도....
그렇게 정이 들어 버린것은 아닐까...
조수석에 던져 넣은 쇼핑백 안이 궁금해 졌다.
신호 받느라 잠시 기다리는 틈에 쇼핑백을 끌어 당겨
그 속을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는
정말로 디스 담배가 몇 보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자그마한 포장 꾸러미도 한개 들어 있었다.
그게 뭘까... 궁금해서 견딜수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서려는데
마침 사무실 미스최가 나오려다 나랑 마딱뜨렸다.
- 어머! 어서 오세요... 사장님 조금 늦으신다고 전화 왔어요.
- 그래... 좀 기다리지...
- 커피 드려요?
- 응....
- 다방커피로요?
- 응.... 오늘은 서울역전다방 커피로 좀 맛있게! 알았지?
- 알았어요. 서울여~억 다방!
미스최는 그 큰 궁둥이를 삐죽 삐죽 흔들며
사무실 안쪽에 있는 주방으로 갔다.
포장을 서둘러 끌러 보았다.
완전 고전적인 지포 라이터가 반짝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남포기름에 라이타돌을 교환해 주어야 하는....
말 그대로 애장하는 골동품 그 자체!
그녀의 마음 씀씀이와 준비성이 또 한번 느껴진다.
자그마한 쪽지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릴적 아빠가 동네 가게에서 심부름 시키면서
담배 한갑하고 가끔은 라이타돌을 사오라고 했어요.
나는 그 조그마한 라이타 돌을 오다가 흘려서
길거리에서 몇번이고 찾아 다녔던 기억이 나요.
그 라이타 돌이 부싯돌이라는 걸 안건
한참 지나서였죠.
아빠 라이타는 한번 불을 붙이면
아무리 쎄게 흔들어도 꺼지지 않았어요.
아빠는 내 앞에서 그걸 보여주시곤 했죠.
자기한테 그걸 하나 꼭 사주고 싶어서 몇군데 보고 다녔는데....
마침 그걸 발견했어요.
구식 스타일이지만 아주 세련됬어요.
이쁜 악마......
그녀의 필체는 마치 자신의 모습을 닮은것 같았다.
아주 작은 글씨로 정성을 다해 꼬박고박 적은....
- 오늘 통관해야 할 이사짐 서류예요.
미스최는 커피잔을 내려 놓으면서
책상에 놓인 두툼한 서류를 가리킨다.
지난주에 통관은 별 문제 없었지?
- 별 문제 없기는요...새로온 신삥한테 걸리는 바람에
사장님이 아주 혼쭐이 났대요.
김이사님이 갔으면 수월했을텐데...
- 나라고 뭐 별 뾰족한 수가 있나?
- 그래도 그쪽 애들 다 꿰차고 있잖아요...친구도 거기 있고..
- 야야.. 누가 들을라.. 그런 소리 마라...미스최!
사무실 문이 삐걱 열리면서 육중한 체구의 박사장이 들어온다.
- 야! 김이사... 지난주에 아주 죽는줄 알었다.
- 뭘 그런걸 갖고 그래? 원래 세관애들 초짜들이 가오잡는거 몰라?
- 그래도 그렇지 지난주에 너 없는줄 알고 부러 그러는것 같드라.
니 친구 뭐야... 그놈 릭이란 놈도 날 보고 아는 척도 안하드라..
- 그러게..내가 뭐래? 릭이랑 골프장 한번 좋은데 데리고 가라니깐....
- 내가 시간이 나냐? 시간이?
- 그래 미스최 젖통 쳐다 볼 시간은 많고 사업상 골프 칠 시간은 없다?
미친눔.. 회사를 말던지....
박사장은 주방쪽을 힐끗 쳐다보면서 목소리를 낮춘다.
- 이눔아. 무슨 말이여? 지랄떨지 말어...
박사장은 담배를 하나 꺼내 내 입을 막는다.
- 요새 짐이 좀 많이 들어 오는 모양이다?
- 그래! 요새 이민들 무자게 오네~
- 오늘 나갈 짐이 몇군데지?
- 한군데.. 둘... 세군데...셋이네!
박사장은 손가락 셋을 펴 보인다.
- 짐은 많어?
- 하나는 아주 백이십개짜리고 나머지 둘은 고만고만해.
- 그럼 오늘 통관 일찍 끝나면 몸좀 풀어 볼까?
- 어! 그래? 왠일이냐? 돈이 좀 궁하냐?
- 이눔아 내가 돈보고 이사짐 날라주냐?
- 그래! 그럼 오늘 공짜로 써비스해 줄래?
- 그렇게는 못허지...
서류를 살펴보던 박사장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다.
- 뭔데?
- 야! 이거봐라. 니집으로 오늘 짐 들어 간다?
- 뭐야? 우리집에 짐이 들어와?
박사장이 내민 서류에는 분명히 내 아파트 주소가 적혀 있었다.
집 전화 번호도..
- 뭐야?
- 이짜식이 내숭은~~ 새꺄!
박사장은 내 머리통을 냅다 갈긴다.
- 뭐야?
다시 서류를 확인해 보았다.
- 이짜식! 이눔이 아주 숭헌 놈이네!
어째 오늘 이삿짐 도와준다고 말하는 꼬락서리라니~~
짜식아! 한국서 들여 오면 들여 온다고 말해야 할거 아냐!
박사장은 다시 내 뒤통수를 갈긴다.
- 자식아 머리 터지겠다!
( 그럴리가 없는데.. 뭔가 잘못 된거 아냐?
아니... 내 집에 무슨 이삿짐이 들어오냐?)
- 이눔이! 다시 합치냐?
서류에 적힌 이름이 눈에 그제서야 확 들어 왔다.
- 우리 계수씨 이름이 혜원이..... 아닌데!
박사장은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날 째려본다.
그러더니 갑자기 새끼 손까락을 치켜 세워 올린다.
- 이런 숭악한눔! 그새 작업을 했네!
박사장은 귓속말로 이야기한다.
- 이눔아. 언제 작업했냐? 아조 이놈이.....완전 숭악한놈이네?
그나저나 이 이삿짐은 내가 직접 갈란다. 알! 건! 냐! 이 도적놈아!
뭐야... 무슨 일이야... 도대채...
미스최가 다가왔다.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 야! 미스최! 여기 집에다 전화해서 확인해봐.
- 알았어요.
미스최는 서류에 적힌 전화번호(내 집전화)에 전화를 건다.
미스최가 내 집 전화를 알턱이 없다.
거의 셀폰으로만 통화하니 말이다...
- 네? 거기 이혜원씨 댁이죠?
- 오늘 이사짐 들어가는거 맞죠?
- 아파트 엘리베이터 예약해 놓으셨죠?
-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확인해 주세요.
- 예. 감사합니다.
박사장이 뒷짐을 지고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한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 얼굴을 실실 살펴 본다.
- 야! 김이사, 오늘 회나 한사라 안 뜰래?
- 미친넘! 회 한사라갖고 되겠냐?
-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부드럽지!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다.
몇번 일부러 기다린 다음에 전화를 받았다.
- 저예요.
- 응.
- 오늘 바뻐요?
- 응.... 원래 월.화 이틀간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쁘잖어..
- 아침에 일찍 나갔어요?
- 응. 일찍 출근했어.
( 속이 움찔 했다.
사실 리치몬드에서 나왔는데.... )
- 집에 일곱시에 왔는데.... 일찍 나갔네...
- 응... 미리 준비할게 좀 많아서..
- 근데....
- 뭐?
- 나... 당신한테 허락도 없이 일 저질렀다!
- 무슨 일?
- 작은애 어학코스도 끝나서 돌려 보낸거 알잖어.
- 그렇지.
- 근데 비싼 홈스테이비용 내고 있자니 아깝고...
렌트구하기도 그렇고....
- 그렇긴 하지...
- 그래서 홈스테이 오늘 종칠려고!
- 그럼 어떻게 할건데?
- 뭘 어떻게해? 내가 갈때가 어디 따로 있나?
- 갈때 없으면 언제고 들어 오라고 내가 키 줬잖어!
- 그래! 맞어! 그게 정답이야! 오늘 들어 간다!
- 뭐라고?
- 오늘 들어간다고!
- 미쳤어?
나는 속으로 신나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겉으론 태연한 척 했다.
- 놀러 오는게 아니고 살러 온다고?
- 그래? 안되?
- 안되!
- 왜 안되?
- 안된다면 안되!
- 왜 안되냐고?
그녀는 갑자기 울쌍이 되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 하숙비 안내고 들어 올라고 그러지?
그녀는 한참 있다가...
정말로 한참동안 말 없이 있다가.....
......
드디어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 여보세요?
몇번이고 불러도 전화통에 대고 깔깔거리고 웃기만 했다.
- 하하하.. 아이고 배야! 그거 조크지?
- 그래~ 조크야...
[ 내일 아침 일찍 토론토엘 가려 합니다.
콘센트 막사긴 하지만 생각보다 사무실에 정리할게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늦게야 마무리가 됬습니다.
눈길이라서 내일 훤할때 갈까 합니다.
아..... 마침 인편이 있어서 잘 썰어진 떡살을 샀습니다.
저녁을 아주 맛있는 떡국으로 해 먹었습니다. 좀 시간이 지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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