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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 - 3부9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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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흘리며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지훈에게 깔려 흔들리던 유미의 알몸이 머리 속에서 지줘지질 않았다. ‘지훈의 여자’라고 하던 유미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머리 속을 울려대고 있었다.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 보았지만 지줘지질 않았다.
자신의 탓으로 유미가.. 그동안 무엇을 했던 말인가.. 하는 자책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너 때문이야..’라던 지훈의 목소리가 마치 바로 옆��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랬다. 자신이 없다면.. 자신만 없다면.. 유미를 끌어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자신만…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 보았다. 복도의 조명을 등지고 지혜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뛰어 온 것인지 숨이 거칠었다. 색바랜 청바지에 코트를 입고 있는 차림이었다. 평상시 희성을 의식해 차려입었던 복장과는 사뭇 달라진 간편한 옷차림이었다. 지혜의 변화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런 것을 의식할 여유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오빠.. 유미 선배를 걸고 내기를 하신다는 게 정말이에요? 왜 그런.. “
똑바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혜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희성은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런.. 그런 내기라면.. 당연히 유미 선배가 상처를 받잖아요.. 오빠가 그랬잖아요.. 누구보다도 유미 선배가 소중하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하세요.. 유미 선배를…”
지혜의 말투와 태도에는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나쁜 건.. 유미선배가 아니에요.. 나.. 나 때문에.. 그러니까.. 나.. 유미선배를 돕고 싶어요.. 이대로라면…”
희성은 그런 지혜로부터 피하듯이 몸을 돌렸다.
“이대로 두면… 유미 선배.. 망가져버린단 말이에요.. 오빠.. 유미 선배 사랑하시잖아요.. 이대로 두면.. 되돌릴 수 없단 말이에요..”
그래도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희성이 아무런 말이 없자 지혜가 희성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유미선배가.. 그만큼 소중하다면서요… 지금 유미선배한테는 오빠의 힘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오빠 정신 좀 차리세요..”
유미를 생각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할 듯 하던 희성이 또 다시 입을 닫아버렸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유미선배를 도울 수 있는 건 오빠 뿐이라니까요.. 유미 선배도 틀림없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구요.. 내가 뭐든지 할게요.. 내가 어떻게 되든… 어떻게 해서라도 꼭 유미선배를 돕고 싶단 말이에요.. 그렇지 못하면.. 난…”
“가만히 좀 두란 말이야.. 그만.. 가만히 좀 내버려 둬”
희성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희성의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오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단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너무.. 늦었어.. 유미는..”
“거..거짓말..”
어떤 일이 있어도.. 그렇게나 유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던 희성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희성의 모습에 지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반쯤 열린 문 저쪽에서 손잡이를 잡은 채 그 모습을 지영은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봐..”
“집에 안가도 괜찮나?”
낡은 아파트의 삐걱이는 계단 앞에서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지훈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건냈다. 해가 지고 주변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북풍이 기세를 드높여 한층 더 추워져 있었다.
“나.. 돌아갈 곳이 없는 걸?”
혼자말인지 지훈의 물음에 대한 대답인지 몰랐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있는 것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지훈이 방의 불을 켰다. 여전히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는 살풍경한 집안의 모습이었다. 유미는 가만히 문을 닫았다. 삐걱이며 문이 닫히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집에까지 따라온 걸 보면..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는 뜻이지?”
우물쭈물하며 서 있는 유미에게 내뱉듯이 말을 걸었다.
“……”
“대답해봐. 그럼 아침까지 아주 뿅가게 해줄게.. 이 밝히는 년아”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빈정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자신이 왜 그토록 짜증이 나는지 지훈이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유미는.. 음란한 년이에요.. 그러니까.. 더.. 괴롭혀 주세요.. 제발…그러니까…”
음란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엉망진창이 되고만 싶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엉망진창이… 차리라 그러는 편이 나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느끼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잊어버리고만 싶었다. 없어져버리고만 싶었다.
“옷 벗고 거기 엎드려”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정체모를 짜증스러움 때문에 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미는 알몸이 되어 바닥에 엎드리고는 지훈을 향해 엉덩이를 치켜 들었다.
“어쭈.. 이젠 아주 자동인데?”
지훈이 손을 들어 크게 휘둘렀다. 짜악 하고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유미의 입에서 막힌 듯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게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짜증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또 한차례 그렇게 거칠게 엉덩이를 때렸다. 지훈의 힘에 밀려 유미의 몸이 앞으로 흔들렸다. 엉덩이를 때리는 거친 소리만이 그렇게 몇번이고 방안에서 울려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으읏… 아으읏”
유미의 입에서 고통을 참는 신음과 뜨거운 한숨이 뒤섞여 새어 나왔다. 고통마저도 괘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조교를 받아왔었기 때문에 지훈의 손이 한번 휘둘러 질 때마다 아픔과는 또 다른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타오르는 듯이 빨개진 엉덩이가 저절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 감각 속으로 빠져들어간다면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으읏.. 으으응.. 아읏… 응…”
하지만 결국 폭력일 뿐이었다. 거침없이 되풀이해서 맞았던 덕분에 부풀어 오른 엉덩이에서는 마치 불에 데인 것 같은 아픔만이 남을 뿐이었다. 멈추지 않는 지훈의 손놀림에 유미는 바닥을 긁으며 아픔을 참고 있었다.
“으읏.. 아… 으으읏…”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유미의 비명이 들려오자 지훈은 손을 멈추었다. 하지만 유미는 달랐다.
“더.. 더 때려줘.. 유미를.. 더 괴롭혀 주세요…”
떨리는 입술이 그 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 유미야…”
얼마동안 그렇게 엉덩이를 때리고 있었는지 지훈이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거움으로 꽤 오랜 시간 그러고 있었다고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였다. 유미를 가만히 안아들고는 추위와 아픔에 떨고 있는 유미의 몸을 침대에 눕혔다.
“… 이젠.. 엉덩이에.. 엉덩이에.. 넣어줘… 응?”
옷을 벗은 지훈이 유미를 가만히 안고는 차가워진 몸을 덥혀주기라도 하려는 듯 품고만 있었다.
“응…? 왜.. 왜 그래?”
긴 머리를, 유미의 청초한 얼굴을 지훈은 손끝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입술을 가만히 가슴에 대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엉덩이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부드럽게 유미의 온몸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처음 지훈이에게 안겼을 때와 같은 부드러운 애무였다.
“그..그만.. 싫어.. 이런 거”
넓은 가슴을 밀쳐대며 반항하고 있는 유미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하지만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채 그렇게 유미를 안고만 있었다.
“이런 거 싫어.. 괴롭혀줘.. 괴롭혀 달란 말야.. 아으응~”
지훈의 자지가 몸으로 파고 들었다. 두 사람의 몸이 하나가 되었다.
“아… 아… 아음…”
뻥 뚫려 있던 가슴으로 무엇인가가 채워들고 있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이런 따뜻함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따뜻함을 원하는 사람은 지훈이가 아니었다. 지훈이한테 그런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만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늘도 늦게까지 고생 많네”
문득 등 뒤에서 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오전1시가 넘어 있었다. 지영은 두 손에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이제 막 탄 듯한 커피 특유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제 그만 들어가.. 몸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어? 이제 시작했을 뿐인데.. 그렇게 무리를 해서는 안돼”
“지금은.. 그냥.. 연구만 생각하고 싶어서요…”
“그래…”
지영이 조용히 희성의 책상 위에 커피잔을 올렸다.
수염이 거칠게 자라나 까칠해진 얼굴을 한 희성은 눈을 마주하지 않은채 입을 열었다.
“아.. 선생님..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전에 얘기했던…”
이러는 것이 최선이었다. 더 이상 유미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지면 되는 일이었다. 자신만 눈 앞에서 사라지면 유미도.. 그 자식도… 그동안 버려두고 있었던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보상…소중한 사람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에 대한… 물론 유미에게 대한 속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자신이 없어지는 것으로써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만 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훈의 지갑안에 들어 있던 두 사람의 사진이 떠 올랐다. 해맑은 웃음을 지훈이에게 보여주었던 유미의 생각이 났다. 자신에게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웃는 얼굴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향할 수 없는 그 웃는 얼굴이 생각 났다.
문득 정신을 차리자 여전히 체온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손가락만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날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뻗어보았지만 닿을 수 없었던 그 손가락만을 그렇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연구…연구에만 전념하기로 하자. 그리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더 강한 남자가.. 조금이라도 더 강한 남자가 되어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그래? 결정했어?”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희성의 머리에 지영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제부터는 내 오른팔이 되어야 한다는 거 잘 알지? 기대할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 그럼 내일은… 아. 회의가 있었지.. 그럼 모레 어때?”
마치 혼자말 처럼 그렇게 말을 마친 지영이 핸드폰을 꺼내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영이에요.. 이 시간에 미안해요.. 좀 급한 일이어서요..모레.. 좀 비워둘 수 있죠? 네.. 네.. 맞아요.. 좀 보여주고 싶은 애가 있어서요.. 후후후.. 맞아요.. 전에 얘기 했던… 안돼요? 글피는 괜찮다구요? 오케이.. 알았어요.. 그럼..”
영문도 모른채 지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희성을 향해서 지영이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런 관계로.. 3일 후에.. 시간 좀 비워두라고.. 집으로 오도록 해. 식사라도 하자고.. 나중에 주소는 문자로 보내줄 테니까”
“네? 왜 갑자기..?”